프로스포츠를 제대로 즐기기에 야간경기만한 게 없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도 야간경기가 인기다. 특히 요즘처럼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어설 때 퇴근 후 ‘치맥’과 함께하는 경기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제격이다. 유럽 등 모터스포츠 역사가 오래된 해외에선 밤에 열리는 경주가 많은데 그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대회가 열리는 기간 내내 서킷 주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나이트레이스의 진정한 매력은 해가 진 다음 드러난다. 밤이 되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레이스카의 속도가 훨씬 빠르게 느껴지는 데다 현란한 조명과 배기음 때문에 몰입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모터스포츠 불모지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도 야간경기가 열린다. ‘CJ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이 2012년부터 시즌마다 1번씩 개최한 ‘나이트레이스’는 어느덧 5회째를 맞아 모터스포츠마니아의 이벤트에서 자동차문화축제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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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워크. /사진제공=CJ슈퍼레이스 |
◆화려한 조명, 어둠 가른 레이스카의 향연
휴가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지난달 30일, 해가 뉘엿뉘엿 지며 땅이 식어갈 무렵 강원도 인제스피디움 서킷(1바퀴=3.905km)의 열기는 오히려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이트레이스로 진행되는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2016시즌 5라운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화려한 조명이 하나둘씩 더해질수록 관람석 빈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올해 나이트레이스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레이스 투 나이트’(RACE TO NIGHT)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늦은 밤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전과 달라진 건 록밴드나 유명 연예인의 공연 없이 오로지 ‘자동차 콘텐츠’로만 승부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날 서킷을 찾은 사람은 무려 8000여명에 달했다. 역대 나이트레이스 중 가장 많은 관중이다. 팀 컬러에 맞춰 번쩍이는 LED로 치장한 레이스카들이 서킷을 질주했고 공식 레이스 외에도 슈퍼카 레이스, 오디오카, 드리프트 이벤트 등의 행사도 마련돼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아울러 팀코리아익스프레스, 제일제당 레이싱, 이엔엠모터스포트의 서포터즈가 서킷을 찾아 새로운 응원문화를 선보였다. 팀106 류시원 감독의 팬클럽까지 응원에 합세해 관람석 분위기가 뜨거웠다.
◆아시아 유일 스톡카레이스, 승자는?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스톡카레이스는 밤 10시에 시작됐다. 올해부터 ‘SK ZIC6000 클래스’로 이름이 바뀐 슈퍼레이스 최상위 종목이다. 배기량 6200cc의 V형8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436마력을 내는 ‘괴물차’들이 벌이는 레이스로 아시아에선 유일하다. 레이스카의 최소무게는 1140kg으로 제한되며 타이어는 제조사를 제한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 팀은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의 레이스용제품을 쓰고 있어 두 타이어브랜드의 자존심대결도 볼거리 중 하나다.
이번 5라운드는 엑스타레이싱 정의철의 독무대였다. 전날 진행된 예선 1위에 올라 결승전 폴-포지션(맨 앞자리 출발)을 차지한 정의철은 레이스가 시작된 뒤 단 한 차례도 선두를 놓치지 않는 완벽한 주행으로 25바퀴(LAP)를 43분20초519의 기록으로 주파했다. 지난해에 이어 인제스피디움 나이트레이스에서 2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위는 싱겁게 정해졌지만 나머지 순위권 싸움에선 치열한 접전이 펼쳐져 관객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4번째 그리드에서 출발한 ‘젊은피’ 김동은(팀코리아익스프레스)은 3번째 그리드에서 출발한 ‘독일용병’ 팀 베르그마이스터(아트라스BX)와 앞서 달린 조항우(아트라스BX)마저 추월하며 2위에 올랐다.
특히 3·4위 자리를 두고 명승부가 펼쳐졌다. 7번째 그리드에서 출발한 제일제당 레이싱의 오일기가 경기 초반부터 과감한 추월쇼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주도했고 결국 후반부 3위까지 순위를 올렸다. 올시즌 첫 포디엄에 오를 것처럼 보였지만 반전 드라마가 또다시 펼쳐졌다. E&M모터스포츠의 김재현이 마지막 바퀴에서 앞서 달리던 조항우(아트라스BX)와 오일기를 추월하며 포디엄 마지막 자리의 주인공이 됐다. 이와 함께 조항우, 이데 유지, 황진우, 김진표, 윤승용(투케이바디), 팀 베르그마이스터가 5~10위로 포인트 피니시를 거뒀다.
지난 라운드에선 한국타이어가 우세였지만 이번엔 금호타이어가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5라운드 포디엄에 오른 선수들 모두 금호타이어의 레이싱타이어 ‘엑스타(ECSTA) S700(드라이)’을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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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워크. /사진제공=CJ슈퍼레이스 |
◆'본질에 집중'한 수준 높은 레이싱
이전 레이스와 달라진 점은 레이스 트랙의 주요 코너에 공항 활주로처럼 유도등이 설치됐다는 점이다. 위험한 코스엔 영화촬영용 조명도 설치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지난해 나이트레이스에서 코스이탈 사고가 많이 발생한 만큼 올해는 안전에 신경 쓴 것이다. 덕분에 선수들이 경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명승부가 펼쳐졌다. 다만 자동차경주장임에도 도입된 소음규제 때문에 배기음을 줄일 수밖에 없어 예전보다 박진감이 떨어졌다는 점이 아쉽다.
CJ그룹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10년째 모터스포츠 대회인 슈퍼레이스를 개최 중이다. 단순히 프로야구나 프로축구팀을 통해 회사를 홍보하는 게 아니라 그룹 차원의 자원을 활용해 더 큰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장(場)을 만들었다. 남이 만든 플랫폼을 이용하기보다는 직접 판을 키워 파트너를 모은다는 전략인 셈이다. 특히 나이트레이스는 아시아시리즈와 더불어 '모터테인먼트'(Motor+Entertainment) 플랫폼의 결정판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