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의 거래시간이 30분 연장됐다. 2000년 점심시간을 없앤 이후 16년 만에 변경된 것. 한국거래소는 거래시간 연장으로 증시의 유동성이 늘어나고 최근 높아진 중화권증시와의 연계성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제도시행 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증권사 직원의 업무부담만 가중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내증시 활성화를 위한다면 거래시간 연장이 아니라 상장사의 실적 등 기초체력을 키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뉴시스 박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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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연장 실효성 ‘제로’
주식시장 거래시간을 30분 연장한 이후 전체 거래대금은 한국거래소의 예상과 달리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 1일 제도시행 후 코스피시장의 5거래일간 평균 거래대금은 4조1732억원으로 시행 전인 지난달 평균 거래대금인 4조1229억원보다 1.2% 증가에 그쳤다. 코스닥시장은 거래시간 연장 이후 오히려 2.9% 감소한 3조9021억원으로 집계됐다.


거래량으로 보면 두 시장 모두 감소한 모습이다. 코스피시장의 한주간 평균거래량은 3억6636만주로 제도시행 전 3억7839만주보다 3.2% 줄었다. 같은 기간 코스닥시장은 6억8834만주로 25.5% 쪼그라들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시간을 연장한 시기가 거래량이 뜸한 여름철”이라며 “휴가철이 맞물리면서 주가의 변동성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거래량과 거래대금도 큰 폭으로 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거래소는 지난 1일부터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정규거래시간을 30분 연장했다. 개장시간은 오전 9시로 변함없지만 종료시간을 오후 3시30분으로 변경했다. 정규거래시간이 늘어나면서 종가 단일가도 오후 3시20분부터 10분간 실시된다.

다만 증권사 직원의 노무적인 문제를 고려해 시간외 거래시간을 30분 단축했다. 모든 거래가 끝나는 시간은 기존과 같은 오후 6시다. 이와 함께 전체 파생상품과 KRX금시장, 장외주식시장(K-OTC) 거래시간도 30분 연장됐다.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 발동시간도 30분씩 미뤄졌다.


거래시간 연장으로 거래소가 예상한 기대효과는 우선 효율적인 매매거래시간 사용으로 인한 유동성 증대다. 거래소는 증시 종료시간대 연장으로 3~8%의 유동성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으로 환산하면 약 2600억~6800억원 수준이다.

또 투자자들의 투자기회가 늘어나면서 증시참여자금이 증가해 시장규모가 커질 것을 기대했다. 실제 최근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증시에 참여할 기회를 노리는 머니마켓펀드(MMF)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3년 66조원 수준이던 MMF 잔고가 지난달 말 128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거래소가 예상한 상황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거래대금은 과거 수준에 머물렀고 증권시장만 길게 늘어진 형국이다. 개인투자자의 자산을 관리하는 프라이빗뱅커(PB)와 펀드매니저, 외환시장 딜러 사이에서는 늘어난 업무시간으로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사무금융노조도 거래시간 연장시행 당일 발표한 성명에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의 거래량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30분 늦춰지면 20여분간 현금정산을 하고 남은 10여분 동안 주거래은행에 달려가야 하는 등 증권사 직원의 고충이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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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체력 육성이 ‘우선’
거래시간 연장에도 기대한 만큼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늘어나지 않자 거래소는 거래시간 연장이 중화권증시와의 연계성 강화가 주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증시 유동성 증가는 일종의 부가적인 효과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거래소는 지난 1일 거래시간 연장 후 5거래일간 증시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을 분석한 자료만 공개했을 뿐 중국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의 괴리율 평균치는 발표하지 않았다.

거래소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지수 CSI100, CSI300, CSI500, FTSE 차이나 A50 등을 기초로 하는 중국 ETF 8상품의 괴리율을 보면 공시의무 발생기준인 2% 이상이 28%, ETF 유동성공급자(LP) 교체 판단기준인 6% 이상이 4%를 나타냈다”며 “하지만 최근 1주일간 괴리율 2%를 넘는 상품은 한 종목이었고 6% 이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자료를 산출하기에는 제도 시행기간이 짧다”며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거래시간 연장이 중국시장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증시 연계성 강화에는 힘주면서도 거래시간 연장이 거래량과 거래대금 증가를 수반하는 부분에는 거래소 내부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거래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거래시간을 늘려서 거래대금이 증가한다면 30분이 아니라 5시간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거래시간 연장이 실제 거래량과 거래대금을 늘릴지 여부에 대해 회의적이다. 해외사례와 다르게 국내증시에는 고빈도매매가 적기 때문이다. 고빈도매매는 기계적 매수·매도방식으로 매우 짧은 시간의 가격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기법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우리나라 증시, 특히 주식현물시장에는 고빈도매매가 거의 없어 거래시간 연장으로 거래량 확대를 가져올 수 없다”며 “시장 유동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상장사의 이익개선 등 실질적인 증시상승 모멘텀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