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를 상징하는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운영에 박근혜정부 실세와 비선, 주요 대기업이 긴밀하게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든 것은 내 탓’이라며 청와대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의혹은 더욱 커진다.


◆규정 무시에 쪼개기 자금 지원

최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포스코, KT, 삼성물산 등의 대기업들은 이사회 규정까지 어겨가며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십억원의 거액을 출연했다. 또 약정 출연금을 충당하기 위해 계열사로부터 쪼개기 모금을 실시했다.


포스코 이사회 규정 제12조(부의사항)는 ‘10억원이 초과한 기부찬조는 이사회에 앞서 재정 및 운영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르재단에 30억원을 출연할 때 사전 심의 규정을 지키지 않고 이사회 의결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KT와 삼성물산의 경우 미르재단에 각각 11억, 15억원을 출연하면서 이사회 의결조차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GS, 현대차, LG그룹 등은 두 재단 지원을 위해 계열사로부터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의 자금을 모금했다.


노 의원은 “일부 대기업들이 내부 의사결정 규정도 지키지 않고 거액의 출연금을 두 재단에 몰아주고, 약정금액 충당을 위해 계열사로부터 각출까지 받는 행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정권이나 권력실세가 개입하지 않고 전경련이 기획한 사업이라면 기업들이 이렇게까지 무리했어야 할 이유가 있는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두 재단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모금을 주도했다는 대기업 관계자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날 노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관계자는 “안 수석이 전경련에 얘기해서 전경련에서 일괄적으로 기업들에 (출연금을) 할당해 (모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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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은 청와대 대신 모든 총대를 메겠다고 나섰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청와대의 지시는 없었고 본인이 낸 아이디어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기업들 의견에 따라 결정한 일”이라며 “각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했다”고 강조했다.  


돈을 낸 기업은 전경련은 심부름꾼에 불과하고 정권 실세를 보고 자금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전경련은 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서열 상위 16개 대기업으로부터 이틀 만에 약 800억원을 모금해 두 재단에 가져다 준 게 전경련의 독자적 행동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에서 신생 재단에 거금을 내라고 한다 해서 16개 대기업이 일제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다른 뒷배경을 보고 자금을 출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에 굴복 vs 대가 염두

청와대, 전경련, 대기업이 얽히고 설킨 이번 의혹은 일견 권력의 압박에 기업이 굴복한 사례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자 전경련이 어설픈 해명으로 모든 짐을 떠안겠다고 나선 것은 모종의 대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벌기업들이 전경련을 앞세워 정부나 정치권에 각종 경제정책을 압박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상이 아니다”며 “더이상 정경유착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서울중앙지검에 두 재단 의혹과 관련 안 수석, 비선 실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자금을 출연한 각 기업 대표 70여명을 고발하면서 “허 회장 등 기업 대표들이 원샷법, 서비스발전기본법 등 노동개혁 5대 법안의 제·개정을 위해 이들 재단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며 “청와대는 이를 수수하고 그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관철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