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지난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삼성 오너일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머니S>는 국민연금의 민낯을 살펴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우리 국민이 낸 소중한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곳이다. 이곳이 독립적이고 투명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우리 국민의 노후도 편안해진다. 우리가 국민연금공단에 주목하는 이유다.


#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7년 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민연금제도의 문제점과 개선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8년 연금이 본격 지급되면서 먼 미래에는 기금이 완전고갈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 2000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내 재정투명성을 점검했다. IMF는 이 테스트를 통해 한국 국민연금의 규모에 대한 계량화와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하고 해약이 불가능하다. 세금처럼 원천징수되는 데다 미납하면 재산을 압류당한다. 개인의 노후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강제성을 지녔지만 운영방식은 28년 역사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서 부적절한 주주권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다시 한번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사진=뉴시스 홍효식 기자
/사진=뉴시스 홍효식 기자

◆기금규모 544조, 2043년부터 감소세
18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가입이 의무화된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65세가 되면 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다. 평균연금은 20년 가입기준 최종보수의 40% 수준이다. 은퇴 직전 월급이 500만원일 경우 연금은 약 200만원이 된다.

만약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구절벽과 고령화로 납입자 수가 줄고 급여지급액이 늘면 기금이 바닥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가입자 수는 2177만4116명, 기금규모는 544조6000억원이다. 국민연금재정 추계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기금규모는 27년 후인 2043년 2561조원까지 불어났다가 점차 감소해 2060년 소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가입자가 평생 부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만큼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세금을 올리거나 빚을 내서라도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 프랑스는 공기업을 매각했고 덴마크는 해외에서 빚을 얻어 국민연금 채무를 갚았다. 영국의 경우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면서 급여지급액을 가입자와 분담했다. 현세대의 노후부양비를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세대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2010년 10.37% ▲2011년 2.31% ▲2012년 6.99% ▲2013년 4.19% ▲2014년 5.25% ▲2015년 4.57% ▲2016년 9월 3.20%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절반 이상을 수익률이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한다. 주식과 대체투자비율은 올해 33%, 11.5%다. 따라서 시장상황이 안 좋으면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지만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30년가량 장기납입하기 때문에 단기수익률이 급여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국민연금 해부] 544조원, 정치 외풍에 '흔들'

◆시장지배력 ‘막강’… 정치외압엔 ‘허약’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국내 대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한국전력, 포스코, 네이버, 현대모비스, SK텔레콤, 기아차, 신한지주, KB금융, 아모레퍼시픽, LG디스플레이, LG화학, 현대글로비스 등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다수 대기업의 최대주주다 보니 상황에 따라서는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특성상 주주권을 유용하거나 외압에 흔들릴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불합리한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구조는 매우 복잡한데 기금의 운영주체가 기금운용본부고 국민연금연구원과 감사, 준법감시인이 정책적 보조역할을 한다. 그 위에 감사원,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기금운용위원회, 실무평가위원회가 심의하고 국무회의와 국회가 승인·감사 권한을 갖는다.

문제는 국민연금공단이 보건복지부의 산하 공공기관이다 보니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훼손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자 국민연금 이사장을 임명제청하는 구조다. 이 체계는 국민연금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긍정적인 기능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의도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고 운용결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소지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 조직 자체가 내부적으로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의사결정을 위원회로 넘기는 등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윤희숙 KDI 부장은 “공공성의 목표가 일관되지 않는 데다 사회간접자본이나 복지사업 등 정책적 수단으로 사용될 우려가 높다”며 “기금운용위원회가 누구의 지휘와 감독도 받지 않게 하고 위원장과 위원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외압의 내용이나 기준을 명시하고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해 논란을 일으킨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도 임용과정에서 낙하산 의혹을 받았다.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주식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의무적으로 회부토록 하는 ‘국민연금 보유주식 의결권 행사지침’의 개정의견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으나 1년이 넘도록 답보상태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