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지난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삼성 오너일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머니S>는 국민연금의 민낯을 살펴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우리 국민이 낸 소중한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곳이다. 이곳이 독립적이고 투명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우리 국민의 노후도 편안해진다. 우리가 국민연금공단에 주목하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고질적인 지배구조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에 국민의 노후자금이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데 흘러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했을 당시 정부의 청탁을 받고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건 국민이 꼬박꼬박 내는 기금이 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이는 국민연금의 기능이 훼손되고 존립근거까지 흔들 수 있는 문제다.

국민연금의 기금규모는 지난 9월 말 기준 544조6000억원이다. 1987년 설립 이후 세계 연기금 3위에 자리할 만큼 외형적인 성장에는 성공했으나 기금운용 등 지배구조는 1998년에 만든 노후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역사가 오래된 해외연기금은 어떨까.

[국민연금 해부] 캐나다, 왜 롤모델인가


세계 연기금의 롤모델, 캐나다 CPP
해외 공적기금은 대부분 기금운용본부가 기금으로부터 독립한 상태다. 연기금의 제도운영과 기금운용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로 인사나 예산편성 시 정부 눈치를 볼 일이 없다.

세계 연기금이 주목하는 캐나다공적연금(CPP)은 기금규모 250조원, 최근 5년간 투자수익률 10.6%를 자랑한다. 기금규모는 국민연금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투자수익률이 국민연금(4.7%)의 두배가 넘는다. 세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연기금들도 CPP의 기금운용을 맡는 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CPPIB)에 주목한다. CPPIB가 움직이는 곳에 돈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CPPIB가 남다른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로 CPP가 CPPIB의 지배구조를 정부에서 독립시킨 점이 거론된다. 1965년 설립한 CPP는 지난 1998년 CPPIB를 연방회사로 창설하면서 제도운영주체인 복지사회개발부와 CPP의 기금운용을 독립시켰다.

CPPIB는 기금의 운용권한을 갖고 운영재원 역시 CPP에서 조달한다. 정부 등 일반재정에서 지원받지 않는다. 이사회, 수탁위원회도 독립성이 보장된다. 연방 재무부 장관이 CPPIB 이사를 선임할 때도 10개 행정구역 주지사와 협의하고 후보자 명단 중에서 이사를 지명한다. 10개 주지사의 추천을 받는 만큼 전문성 등 자격요건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장관은 자격요건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금융 및 투자분야 전문가를 CPPIB 이사로 선임한다.

기금규모 세계 2위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역시 기금운용을 노르웨이중앙은행의 자산운용조직인 노르웨이 중앙은행투자관리처(NBIM)가 맡는다.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도 자회사 APG(All Pension Group)를 따로 두고 기금운용업무를 전부 옮겼다. 두 연기금은 높은 투자수익률과 안정적인 기금관리로 국민의 노후자금을 든든하게 보장한 대표적인 준정부기관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장(CIO) 선임절차는 단순하다. 국민연금 이사장이 후보자 1인을 추천하면 복지부 장관이 승인하는 구조다. 인사 절차상 투명성이 결여된 데다 CIO를 선임하는 국민연금 이사장마저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청, 대통령이 선임하는 탓에 정부 입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CPPIB의 기금 투자포트폴리오도 국민연금과 대조적이다. CPPIB는 CPP에서 독립한 후 보수적인 기금운용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한다. 기금운용주체가 자율성을 갖기 때문에 국내외 금융시장을 판단한 후 투자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 CPPIB는 1999년부터 주식투자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군을 다양화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시행 중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CPPIB의 자국 주식투자비중은 7%인데 반해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18.5%(약 92조8000억원)로 2배 이상 높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세계 연기금은 리스크 분산과 투자 효율성 차원에서 자산의 절반을 해외에 투자하는 추세”라며 “국내주식에 편중된 국민연금의 투자포트폴리오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해부] 캐나다, 왜 롤모델인가

◆같은 듯 다른 미국 캘퍼스
미국 캘리포니아의 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는 지배구조가 국민연금과 비슷하다. 국민연금공단 내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것처럼 캘퍼스에도 투자사무국이 부서로 존재한다. 제도와 연금기금 운영을 같은 조직에서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다른 점은 캘퍼스 CEO가 투자사무국 업무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투자와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은 투자사무국이 CEO와 협의한 뒤 캘퍼스 운영이사회 산하 투자위원회 관리·감독 하에 진행된다. 캘퍼스의 기금투자 의사결정도 국민연금과 비슷하다. 투자위원회는 투자부가 작성한 자산배분안과 투자정책을 검토한다. 차이점은 기금의 투자·자산배분전략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외부 컨설팅사 위주로 구성된 이사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적인 투자방향을 주도하는 것.

특히 위원들은 선거로 선출되기 때문에 가입자 또는 수급자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다. 각 단체 추천을 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하는 우리나라 기금운용위원과는 달리 대표성을 지닌다. 임기가 4년이지만 다시 선출되면 재임이 가능하다. 투자 포트폴리오도 다양하다. 지난해 9월 기준 캘퍼스의 주식투자금액은 총 1283억달러(약 150조원)로 미국증시에 투자하는 자금이 660억달러(51%)다. 나머지 49%는 해외종목에 투자한다. 미국증시와 해외증시에 절반씩 투자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해외연기금과의 단순 수익률 비교에 발끈한다. 미국 캘퍼스, 네덜란드 공무원연금 등은 일부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하는 직역연금인 반면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보장기금으로 재원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각 나라별로 기금의 태생부터 운용방식, 운용목표가 다른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과 단순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외풍에 시달리지 않고 독립적인 자금운용을 행사하기 위해선 해외연기금의 지배구조를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의 재정목표를 정립하고 기금운용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물론 재정목표는 부여한 기금의 역할 안에서 구현해야 하나 기금운용의 투명성·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지배구조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먼저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www.moneys.news) 제4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