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이 LG생명과학을 품고 삼성·SK가 뛰어든 바이오사업 패권 다툼에 본격적으로 가세한다. 지난달 28일 LG화학과 LG생명과학은 각각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양사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합병은 LG화학이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LG생명과학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른 변수가 있지만 계획대로 합병이 진행될 경우 LG화학은 미래먹거리인 바이오부문을 더욱 강화하며 삼성·SK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바이오사업, 삼성·SK·LG 각축전
LG화학과 LG생명과학 합병비율은 각각 보통주 1대0.26, 우선주 1대0.25로 합병기일은 내년 1월1일이다. LG생명과학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간은 오는 19일까지이며 29일까지 주식매수권청구권(주당 6만7992원) 대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지난 9월 양사 합병안이 발표된 이후 주가가 하락하며 일각에선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업계에선 합병이 무난히 성사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총 3000억원을 넘어서면 합병을 취소할 수도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현재 주가 수준을 감안해 단순 계산하면 대략 8000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LG화학의 3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1조9000억원에 달해 실탄은 충분하다.
박진수 부회장은 올 초부터 에너지(배터리 포함), 물(수처리 필터), 바이오사업을 3대 미래성장동력으로 꼽고 투자를 늘려왔다. 특히 바이오사업과 관련해 박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바이오는 인류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야”라며 “과감한 선제적 투자를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사업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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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사진=뉴스1 DB |
그는 지난 4월 동부그룹의 종자·농화학기업인 팜한농을 4245억원에 인수하며 바이오사업에 첫발을 디뎠다. 농수산물 관련 그린바이오부문에 발을 담근 상황에서 현재 추진 중인 LG생명과학과의 합병은 제약·바이오를 뜻하는 레드바이오부문으로의 영역 확대를 의미한다.
전세계 레드바이오시장은 현재 약 1100조원이며 2020년까지 1400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국내 대기업 중에선 삼성과 SK가 한발 먼저 이 분야에 진입했다.
삼성은 2009년부터 약 2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연구개발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축으로 관련 사업을 집중 육성 중이다.
SK는 1993년부터 신약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 생활과학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SK바이오팜을 설립하면서 중추신경계 신약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지난해 4월 SK바이오팜으로부터 SK바이오텍을 물적분할해 화학의약품CMO사업에도 진출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삼성·SK가 바이오사업에 먼저 뛰어든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LG가 이들을 추격하거나 넘어서기 위해선 2002년 분사한 LG생명과학을 다시 품는 게 필수적이었다.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3854억원을 기록한 LG생명과학은 연구개발(R&D)에 제약업계 톱5 수준인 매출액의 17.3%를 쏟아부었지만 삼성·SK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LG생명과학이 자금력이 풍부한 LG화학의 품에 안기면서 2강 구도가 3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LG화학은 2025년 바이오사업에서 5조원대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년 2000억~5000억원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이 무난히 마무리될 경우 바이오사업을 한층 강화한 LG화학이 삼성·SK가 다투던 바이오사업 패권 다툼에 본격적으로 가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학업계 샐러리맨 신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박 부회장은 1977년 LG의 모태인 럭키 프로젝트실에 입사한 이후 LG화학 여천 스티렌수지 공장장, 특수수지 사업부장 등을 역임하며 현장경험을 쌓았다.
2003년 LG화학에 인수된 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아 경영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 그는 2년 뒤 LG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어 2008년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 사장을 거쳐 2012년 LG화학 사장에 선임됐다.
사장 선임 이후 LG화학을 국내 1위, 글로벌 6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부터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박 부회장의 경영은 인재중심과 품질·혁신 강조로 요약된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이 지난달 17일 오픈한 ‘상시 인재등록시스템’은 채용기간과 무관하게 지원자가 자신의 업무능력과 전문분야를 등록해 두면 회사가 적합한 인재를 찾아 채용과정을 진행하는 제도로 박 부회장의 작품이다.
팜한농 인수를 계기로 바이오분야 인재 확보에도 나섰다. 지난 10월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과 바이오분야 인재양성을 위한 ‘산학협력 프로그램 운영 협약’을 체결하고 바이오분야 전문 R&D 인력 육성을 시작했다.
또 해외에서 우수인재를 채용하는 ‘비즈니스&캠퍼스 투어’(B&C)를 주관해 왔는데 올해도 지난 5월 중국, 7월 일본, 10월 미국을 직접 찾아 B&C투어를 주관했다.
품질·혁신과 관련해선 지난 6월 CEO 직속 ‘품질·혁신담당’ 조직을 신설하고 품질시스템 구축과 개선 과제 발굴 및 실행을 직접 챙기고 있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대전 기술연구원에서 열린 ‘베스트 프랙티스 콘테스트’ 행사에서 “시장선도기업이 갖춰야 할 기본은 혁신의 일상화와 고객을 감동시키는 최고의 품질”이라며 “혁신은 거창하고 어려운 게 아니라 개인과 조직이 일상생활 속에서 습관화할 때 실현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아무리 뛰어난 시장선도 제품도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고객에게 외면받기 마련”이라며 “품질에서 신뢰가 한번 무너지면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40여년간 화학산업에 몸담으며 국내 화학업계를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한 박 부회장의 바이오사업 도전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LG화학 여천 스티렌수지 공장장(상무) ▲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이사 ▲LG석유화학 대표이사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사장) ▲LG화학 CEO 사장 ▲한국화학산업연합회 부회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의회 부회장 ▲LG화학 CEO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