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이론은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 아래 출발한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감정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투자가정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행동경제가 주목받는다.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실험을 통해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기 전 10만원을 잃어버린 경우와 10만원을 주고 구입한 콘서트 티켓을 잃어버려 다시 사야 하는 경우를 비교한다. 이때 잃어버린 결과는 동일하지만 첫번째 경우 티켓을 구매하겠다는 사람은 88%이고 두번째 경우 다시 구매하겠다는 사람은 46%에 불과했다.


결국 금액은 같지만 티켓값으로 20만원을 사용하는 마음속의 별도 장부에는 차이가 나타난다. 자금출처와 용도에 따라 가치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행동경제에서 ‘심적회계’(Mental Accounting)라고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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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소비경향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복권당첨처럼 손쉽게 얻은 소득은 큰 부담 없이 사용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쉽게 쓰기 어렵다. 심적회계로 손쉬운 소득과 어렵게 거둔 소득을 분리하기 때문이다. 또 같은 일을 했더라도 매달 받는 월급보다 상여금으로 일시에 받았을 때 소비부담이 덜한 경향이 있다. 만약 상여금을 매달 나눠 받았다면 월급으로 간주해 소비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금융투자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주식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배당수익과 시세차익으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1억원을 주식에 투자한 후 3%를 배당받아 현금으로 300만원을 얻는 것과 주가가 뛰어 3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결과가 같은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배당으로 300만원을 받으면 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주가상승에 따른 수익은 팔아서 현금화할 경우 이후의 추가상승이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적회계는 생애설계를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제약이 되기도 한다. 재무목표달성기간이 짧거나 자녀와 관련된 금액은 물리적으로 계좌를 나누지 않더라도 심적회계가 작동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용도의 자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상견례가 끝난 예비부부라면 당장 필요한 결혼자금을 살펴보고 관련된 자금을 쉽게 쓰지 않는다. 또 자녀 교육열이 남다른 우리나라는 자녀의 교육목적자금은 당장 굶을지언정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본인의 노후자금처럼 다소 장기적인 목표라면 다른 양상을 보인다. 미래의 자금수요를 고려해보고 현재 자금수준보다 낮다면 일부 자금을 미래로 돌리는 게 합리적인 과정이다. 현재의 자금을 수입이 없어지는 은퇴 이후로 옮기는 과정은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마음속 장부와 현재소비의 장부가 잘 분리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은퇴준비는 앞선 사례의 자금보다 중요한 부분이지만 눈앞의 소비에 집중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다. 이 또한 심적회계 오류에 해당된다. 미래의 소비용도와 현재의 소비용도를 분리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자산관리를 위해 심적회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목적에 따라 별도의 통장으로 분리

자금은 생애 전기간에 걸쳐 사용된다. 기본적인 생활비는 물가수준을 감안해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 위에 자녀교육, 자기계발, 의료비 등 추가자금이 지출되는데 매년 이 필요자금의 규모가 일정치 않다. 또 사전에 연도마다 다른 지출계획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지출을 줄이거나 생활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교육, 의료비 등은 별도의 자금으로 분리해 관리하거나 보험가입을 통해 급격한 지출을 완충해야 한다. 또 매달 생활비는 물가 상승이나 소득단절에 대비해 기간을 분리하는 게 좋다. 기간분리는 은퇴 전후가 기본이지만 은퇴까지 많이 남았다면 이전이라도 기간을 분리해 조금씩 별도의 통장으로 나누자.

◆자금 원천에 대한 심적회계 극복

가계의 수입은 직장인이라면 월급과 상여금, 사업가라면 사업소득이 있다. 통상 월급이나 월세수입 외에는 비고정적인 수입이 많다. 이 비고정적인 수입에 대한 소비자극을 극복해야 한다. 이럴 때는 몇년간 정산한 연말정산결과를 토대로 평균적인 수입을 예상해야 한다. 매월 지출도 고정수입에 맞도록 계획하고 비고정수입의 지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대부분 비고정수입의 지출계획이 없기 때문에 목적별 자금 통장에 쌓지 못하고 손쉽게 소비한다. 매월 소득자체가 비고정적이라면 평균적인 수입을 매월 지출계획에 맞추자. 역시 매월 수입에서 남는 부분은 또 다른 별도의 통장으로 분리해 운용하고 부족할 때 채워넣는 것이다.

이 자산관리의 경우 단점이 있다. 자산 간 상관관계에 의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결정해야 하지만 이렇게 분리하면
[고수칼럼] 통장 부자 vs 부자 통장
계좌 간의 상관관계는 무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관관계보다 목적에 따른 분리효과가 중요하다. 실제 자산관리가 일반화된 미국에서도 목적기반 자산관리는 매우 일반적이며 각 통에 들어갈 자산을 본인의 성향과 목적의 우선순위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예전에는 통장개수가 많으면 부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의미 없이 통장수만 많다고 해서 부자는 아니다. 이제 목적에 따른 통장수를 늘려보자. 그래야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