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나 철도를 잇는 ‘터널’은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국가기반시설이다. ‘터널이 무너질까’라며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최근 건설분야 안전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유례없는 대지진이 발생하며 국민의 불안감도 커졌다. 본지 취재 결과 국내 터널공사에서 사용하는 일부제품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신기술로 지정한 ‘튜브형강관’은 재질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가장 중요한 제품성능을 검증할 길이 없다. 이런 불량제품이 대기업의 입찰 가산점 제도에 의해 강매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터널강관 안전문제. 계속 두고봐도 될까. <머니S>가 터널 전문가와 관련업계 종사자, 정부당국 관계자들을 통해 터널강관의 안전여부를 다각도로 짚어봤다.
<글 싣는 순서>
①검증없는 제품 무분별사용
②록볼트 시공, 해외는 어떨까
③하청업체에 부담 주는 신제품 비용
④제품경쟁에 제멋대로 설계 변경
<글 싣는 순서>
①검증없는 제품 무분별사용
②록볼트 시공, 해외는 어떨까
③하청업체에 부담 주는 신제품 비용
④제품경쟁에 제멋대로 설계 변경
영화 <터널>을 보면 설계도를 무시한 부실공사가 이뤄진 사실이 터널 붕괴 이후에야 밝혀진다. 현실성이 낮아 보이는 설정이지만 실제 설계도와 공법 변경은 건설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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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터널. /사진=머니투데이 DB(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안전성 논란 후 제품 교체 의혹
터널 자재 중 하나인 ‘록볼트’는 국내 10개 중소 토목업체가 만드는 일반록볼트 제품이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한다. 2014년 코오롱글로벌이 해외 특허기술을 본떠 만든 신제품 ‘튜브형강관’은 전체 터널공사의 10%가량을 납품하지만 시장점유율이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기존 록볼트생산업체와 이권다툼을 벌이면서 터널 안전과 설계도를 무시한 제품 교체가 빈번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토목업계에 따르면 함양-울산 고속도로 일부구간 밀양-울산 공사현장에서는 시공사의 설계 변경에 의해 록볼트 제품이 수차례 교체됐다. 터널공사는 산속 암반 등의 상태에 따라 적합한 록볼트를 시공함으로써 하중을 견뎌야 하는데 단순히 자사 제품을 팔기 위해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토목업계 복수의 관계자는 “코오롱글로벌이 자사 제품을 납품하려고 설계 변경을 요청했다가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자 기존의 일반록볼트로 다시 변경했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밀양-울산 고속도로사업은 코오롱글로벌과 여러 하청업체가 시공과 납품을 맡고 있다. 하청업체 관계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본지가 록볼트 관련 첫 보도를 한 지난 10월14일 후 코오롱글로벌이 갑작스럽게 설계를 재변경해 중단됐던 납품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코오롱글로벌과 한국도로공사, 토목업계 기타 관계자의 말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코오롱글로벌은 설계 변경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한국도로공사는 시공사의 자체 생산제품으로 교체하기 위한 1차 변경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자사 제품 홍보 위해 정보 왜곡
록볼트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살펴보고 제품과 규격 등을 정한다. 반면 국내 현장에서는 성능과 관계없는 이유로 제품 선택과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 록볼트 원천기술 보유사인 스웨덴 아트라스콥코 관계자는 “어느 록볼트가 안전하다기보다는 현장마다 지반과 암석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고 시공해야 한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안전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기업들이 자사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안전문제를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터널 안전이 기업의 이권다툼에 희생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예컨대 록볼트와 관련 터널 붕괴의 위험성을 두고도 정부와 코오롱글로벌 등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만큼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 반면 토목업계와 아트라스콥코 관계자는 “터널공사 수준에 따라 붕괴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글로벌은 자체 제작한 ‘신기술 제581호’ 보고서에서 제품정보를 왜곡해 기재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튜브형강관의 단가가 일반록볼트 대비 5%가량 낮은 것처럼 기재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코오롱글로벌은 밀양-울산 현장의 설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일반록볼트를 자사 제품으로 교체하며 추가 시공비를 부담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신기술은 충분한 검증과 떳떳한 절차를 거쳐 안전성이 보증된 뒤에 사용해야 하지만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신기술을 무조건 깎아내리려는 기존 업체들의 태도도 고질적인 병폐”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코오롱글로벌과 한국도로공사, 토목업계 기타 관계자의 말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코오롱글로벌은 설계 변경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한국도로공사는 시공사의 자체 생산제품으로 교체하기 위한 1차 변경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초기 설계도에는 일반록볼트였는데 시공사 측이 자사 제품으로 변경을 요청하면서 비싼 자재비를 직접 부담하겠다고 해 승인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튜브형강관을 다시 일반록볼트로 바꾸는 2차 변경은 없었다”며 “대신 일부현장은 암반의 성격 때문에 유리강관으로 변경한 곳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록볼트생산업체에서 30년 넘게 종사한 한 고위관계자는 “현장 중에 튜브형강관에서 유리강관으로, 다시 일반록볼트로 변경된 곳이 있다”며 “설계도는 시공비 감축이나 안전문제 등의 이유로 변경할 수 있지만 단순히 자사 제품을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바꾸는 것은 터널 안전을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또한 사업감리단 관계자는 “자재의 종류나 규격, 수량을 바꾸기 위해 공사 도중 설계를 변경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며 “설계 변경 없이 제품을 교체한 사실은 없다”고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록볼트생산업체에서 30년 넘게 종사한 한 고위관계자는 “현장 중에 튜브형강관에서 유리강관으로, 다시 일반록볼트로 변경된 곳이 있다”며 “설계도는 시공비 감축이나 안전문제 등의 이유로 변경할 수 있지만 단순히 자사 제품을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바꾸는 것은 터널 안전을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또한 사업감리단 관계자는 “자재의 종류나 규격, 수량을 바꾸기 위해 공사 도중 설계를 변경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며 “설계 변경 없이 제품을 교체한 사실은 없다”고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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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한국도로공사 |
◆자사 제품 홍보 위해 정보 왜곡
록볼트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살펴보고 제품과 규격 등을 정한다. 반면 국내 현장에서는 성능과 관계없는 이유로 제품 선택과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 록볼트 원천기술 보유사인 스웨덴 아트라스콥코 관계자는 “어느 록볼트가 안전하다기보다는 현장마다 지반과 암석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고 시공해야 한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안전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기업들이 자사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안전문제를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터널 안전이 기업의 이권다툼에 희생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예컨대 록볼트와 관련 터널 붕괴의 위험성을 두고도 정부와 코오롱글로벌 등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만큼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 반면 토목업계와 아트라스콥코 관계자는 “터널공사 수준에 따라 붕괴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글로벌은 자체 제작한 ‘신기술 제581호’ 보고서에서 제품정보를 왜곡해 기재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튜브형강관의 단가가 일반록볼트 대비 5%가량 낮은 것처럼 기재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코오롱글로벌은 밀양-울산 현장의 설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일반록볼트를 자사 제품으로 교체하며 추가 시공비를 부담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신기술은 충분한 검증과 떳떳한 절차를 거쳐 안전성이 보증된 뒤에 사용해야 하지만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신기술을 무조건 깎아내리려는 기존 업체들의 태도도 고질적인 병폐”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