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이 회계법인으로부터 외부감사를 거절당한 지 한달이 지났다. 바로 뒤를 이어 한진중공업도 한정의견을 받으면서 건설업계가 새해 회계감사를 앞두고 흉흉한 분위기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대형 분식회계 사건 이후 회계기준이 보다 엄격해진 때문이다. 국내 수주산업의 회계선진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지만 가뜩이나 실적이 우울한 건설업계의 앞날에는 암운을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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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본사. /사진=머니투데이 DB |
◆대형건설사 외부감사 잇단 제동
대우건설과 한진중공업의 외부감사인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지난 3분기 두 회사의 재무제표 분기보고서에서 “공사수익 측정과 관련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외부감사인은 감사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4종류의 의견을 낼 수 있는데 대우건설은 가장 나쁜 의견거절, 한진중공업은 한정을 받았다.
국내 4대 회계법인이 상장기업에 의견거절을 제기하는 일은 1% 미만으로 이례적이지만 그 배경을 보면 예견이 가능했다. 지난해 대우건설은 3896억원 분식회계로 정부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징계를 받았다. 지정 외부감사인 안진회계법인 역시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분식회계를 방조한 혐의로 형사처분을 받았다. 대우건설과 안진회계법인 둘다 분식회계에 연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보다 엄격한 회계기준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를 계기로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을 도입, 수주기업의 공사진행률과 미청구공사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올해 건설업계 등의 사업보고서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커진 것. 정부의 회계선진화 추진에 건설업계는 탄원서까지 제출하며 반발했지만 결국 올해부터 제도시행에 들어갔다.
이번 대우건설과 한진중공업 사태가 다른 건설사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업계 전체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수주기업들이 깐깐해진 회계기준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 건설업계 관계자는 “준공예정 원가와 미청구공사의 적정성 여부는 오랜 시간 수주산업과 회계업계 사이의 딜레마였고 이번 일을 계기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안진은 대우건설 측 의견을 수렴해 예년보다 한달 이상 앞당겨 지난달 말 외부감사에 돌입했다. 감사거절 사태 이후 대우건설 주가는 보름 만에 20%가량 급락했다. 시가총액이 약 5000억원 증발했다. 대우건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내년 3월 ‘2016년 사업보고서’의 감사의견이 나온 이후 매각공고를 내기로 일정을 늦췄다. 당초 이르면 내년 1월께 매각공고를 내기로 한 것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이번 감사거절 사태가 그만큼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분기보고서에 대한 의견거절은 법적 제재가 없지만 연말 감사보고서의 감사의견이 한정 이하면 주식거래가 정지되고 상장폐지 사유도 된다.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사에는 치명적인 오점이다.
◆분식회계 부추기는 미청구공사
건설·조선·항공 등 수주산업은 그동안 허술한 회계기준으로 분식회계의 위험에 노출돼 왔다. 수주산업의 회계절벽은 대부분 미청구공사로 인해 발생하는데 미청구공사는 발주처에 대금을 청구하지 못한 미수금을 의미한다. 발주처가 건설사의 공정률을 인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항목이다. 이를테면 A건설사가 1000억원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는데 올해 공정률이 25%라고 계상한 데 반해 공사금액은 20%만 받으면 50억원이 미청구공사로 인식되는 것이다. 건설공사처럼 사업기간이 수년 걸리는 경우 이런 미청구공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사업진행 정도에 따라 돈을 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대손충당금을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금 회수에 실패하면 즉시 손실로 인식된다.
안진회계법인이 대우건설에 대해 의견거절을 낸 것 역시 이런 미청구공사를 잠재부실로 여겼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올 3분기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의 미청구공사 금액은 14조원에 달한다. 이 중 대우건설을 포함 대림산업, GS건설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미청구공사가 늘어났다. 대우건설의 미청구공사 규모는 2013년 1조5000억원을 기록한 후 계속 늘어 올 3분기 2조158억원을 돌파했다. 미청구공사 금액이 가장 많은 상위 5개 프로젝트는 저유가 침체를 겪고 있는 중동사업이다.
대형건설사인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도 미청구공사 손실을 반영하면서 어닝쇼크를 기록한 바 있다. 삼성물산은 올 1분기 해외플랜트 손실을 선반영해 434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3분기 1조5127억원의 영업손실을 반영해 자본잠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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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필리핀조선소. /사진제공=한진중공업 |
◆공시 허술… 국제회계기준 변수
최근 금융감독원 점검 결과 수주기업 10곳 중 2곳은 사업의 세부내용을 허술하게 공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올 상반기 수주기업 216곳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기재사항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건설·조선업체가 40곳(18.5%)에 달했다.
금감원은 이들 기업과 외부감사인에 점검 결과를 공지하고 자체 시정하도록 했다. 다음 반기보고서 제출 때 또 공시내용을 누락한 기업은 금감원 감리대상에 오르게 된다.
더구나 한국회계기준원은 2018년 재무제표부터 국제회계기준(IFRS)15의 한국버전 한국회계기준(K-IFRS)1115호 적용을 검토 중인 상황이라 수주산업의 매출규모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IFRS15 도입으로 공정률을 적용하지 않으면 건설사들은 연도별로 나눠 기재했던 수익을 수익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