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연초부터 공격적 투자와 대규모 채용계획을 밝혀 이목을 끌고 있다.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잇달아 성공시켰고 대규모 지분투자가 이어진다. 이와 함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 트럼프 쇼크 등 국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다른 대기업이 소극적 경영행보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광폭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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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SK본사. /사진=머니투데이 DB |
◆사상 최대 투자·채용
SK그룹은 최근 16개 주력 관계사들의 올해 계획을 종합한 결과 총 17조원을 투자하고 8200명을 채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투자규모가 지난해 집행한 14조원 대비 20% 이상 증가했고 채용인원도 전년보다 200명 늘었다.
세부 투자계획을 살펴보면 SK는 최근 몇년간 글로벌 성장을 주도한 SK하이닉스에 가장 많은 7조원을 투자한다. 또 SK이노베이션에 3조원, SK텔레콤 등 기타 계열사에 2조1000억원을 투자하고 M&A와 지분투자 등 전략투자에 4조900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지주사 SK는 지난해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 SK머티리얼즈(옛 OCI머티리얼즈)를 약 5000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지난달 23일 LG가 보유한 LG실트론 지분 51% 전량을 6200억원에 사들이며 반도체 수직계열화 완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실트론은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소재인 반도체용 웨이퍼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 300㎜웨이퍼분야에서 지난해 글로벌 시장점유율 4위를 기록했다. 300㎜웨이퍼는 세계적으로 극소수 기업만 제조기술을 보유한 기술 장벽이 높은 소재로 국내 기업 중에는 유일하게 LG실트론만 글로벌 반도체제조사에 제품을 공급해왔다.
SK 관계자는 “앞으로 글로벌기업과의 추가적인 사업협력 및 해외시장 진출 등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종합소재기업으로의 비전을 실현해나가는 한편 국내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0나노급 D램 양산과 72단 3D낸드플래시의 성공적 생산을 위한 투자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하반기에는 중장기 낸드플래시시장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충북 청주시에 신규공장 건설도 시작한다.
이와 함께 세계 2위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업체인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문 지분 20% 확보 경쟁에도 뛰어든다. 투자금액은 3조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지분 인수를 통해 낸드플래시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격차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일 미국 1위 화학기업 다우케미컬 에틸렌아크릴산사업부문을 3억7000만달러(약 4232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또 중국 석유화학업체 상하이세코 지분 50% 확보도 노리고 있다.
SK텔레콤은 앞으로 3년간 11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SK의 3대 성장축인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에너지·화학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경쟁력 강화에 나선 셈이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수세적으로 대응할수록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최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확대와 인재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철학에 맞춰 주력 관계사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경영계획을 발표하고 차질 없이 실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주력 계열사의 실탄이 충분한 만큼 SK의 공격적인 M&A 행보는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조2767억원을 기록했고 SK이노베이션도 3조2285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의 자금사정과 연초 공격적 경영행보를 보면 앞으로도 기존 주력사업을 중심으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에 M&A 시도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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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DB |
◆지배구조 개편 가시화
지배구조 개편도 가시화됐다. 최 회장은 최근 GS그룹 오너일가인 고 허완구 승산 회장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분관계가 전혀 없으면서도 SK브랜드를 사용하는 느슨한 연대 형태의 지배구조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K는 현재 지주사 SK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네트웍스 등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 SK하이닉스는 SK텔레콤을 통해 지배하는 손자회사다.
따라서 SK텔레콤이 인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하고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승격시키는 쪽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과 같은 지배구조에서는 SK하이닉스가 M&A 등을 할 때 각종 규제를 받아 사업 규모를 키우기 쉽지 않아서다. 이와 관련 SK 측은 “최 회장의 발언이 당장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선 SK가 올 상반기 중으로 비주력사인 SK증권 등 금융업을 정리하면서 3대 성장축인 반도체, ICT, 에너지·화학 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지배구조 및 사업재편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