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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지난달 24일 국내 출시된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를 즐기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
#1. 경기 성남시에 사는 이모씨(43)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회사원이다. 이씨는 얼마 전부터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인근 탄천으로 산책을 나간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이씨는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소원한 사이였다. 이씨와 아들을 가깝게 이어준 것은 포켓몬 고다. 아내에게 아들이 포켓몬 고를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이씨는 그 길로 포켓몬 고를 시작했고 궁금한 점은 아들에게 물어봤다. 아들은 신이 나서 알려줬고 주말에 같이 포켓몬 고를 하러 가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포켓몬 고가 부자 간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문 것. 이씨는 “포켓몬 고 덕분에 아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며 “아들과 함께 포켓몬 고를 즐기면 날씨가 추운 것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2. 서울 은평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32·여)는 결혼 전부터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과 자주 다퉜다.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면 몇시간동안 움직이지 않고 게임에만 몰두하는 골수 게이머였다. 김씨는 포켓몬 고가 출시되자 남편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김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둘은 같이 포켓몬 고를 시작했다. 함께 포켓몬 고를 즐기다보니 김씨와 남편은 자연스레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다툼도 줄었다. 김씨는 “남편의 취미생활인 게임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함께 포켓몬 고를 하다보니 게임이 해롭다는 것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3. 대전에 사는 정모씨(64)는 이번 설 명절을 통해 손자와 더 가까워졌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손자와 포켓몬 고를 즐기며 공감대를 형성, 명절 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그는 포켓몬 고에 대해 알지 못했다. 열흘이 지난 지금도 많이 아는 편이 아니다. 게임이라는 말에 손사레도 쳤다. 하지만 손자가 좋아한다는 말에 생각을 바꿔 설치했더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오늘도 정씨는 손자가 왔을 때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휴대폰을 조작한다. 정씨는 “예전에는 명절에 손자가 놀러와도 같이 나눌 말이 없었다”며 “포켓몬 고를 주제로 이야기하다보니 손자가 기뻐했고 덩달아 나도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 포켓몬 고의 가장 큰 무기, ‘공감’
지난달 24일 한국에 상륙한 포켓몬 고는 신드롬이라 불릴만큼 큰 파급력을 불러왔다.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이 거리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무언가에 몰두한다. 희귀한 포켓몬을 잡으면 너나없이 환호성을 지른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거리에서 웃으며 인사를 주고 받는다. 버스 안에서 40대 아주머니와 초등학생 아이가 같은 주제로 얘기를 나눈다. 포켓몬 고가 불과 2주 만에 만들어낸 풍경이다.
포켓몬 고는 빠른 속도로 모든 연령층을 끌어당기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총 850만명의 유저들 중 40~50대가 130만명에 이른다.
이 정도의 빠른 인기와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낸 게임은 20여년 전 스타크래프트가 유일하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었다. 게임 전개가 중장년층이 함께하기엔 지나치게 빨랐다. 하지만 포켓몬 고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어린 시절 포켓몬 애니메이션을 보며 성장한 20~30대에게 가장 인기가 높지만 포켓몬을 전혀 모르던 어린이와 여성, 노년층에도 귀여운 캐릭터와 손쉬운 게임방식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포켓몬 고 열풍이 스타크래프트의 그것보다 매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또 하나의 강점은 '야외성'이다. 많은 부모가 방안에서 게임을 즐기는 자녀의 운동부족을 걱정한다. 포켓몬 고는 밖에 나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열심히 걷다보면 체력이 강해지고 그 과정에서 귀여운 포켓몬도 얻을 수 있다.
기성세대는 PC앞에 몇시간동안 앉아 게임을 즐기는 모습 대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게이머들을 보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만난다. 그렇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공감대가 형성된 관계에서는 나이, 성별, 국적의 의미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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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수은주가 영하 10도에 달하는 혹한 속에서 한 시민이 포켓몬 고를 즐기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은 포켓몬 고의 또다른 장점이다. 포켓몬 고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불, 물, 땅, 전기, 독 등 각각 속성을 지니고 있다. 포켓몬의 등장 위치는 이 속성에 따라 구분된다. 포켓몬 고 유저가 몰리는 공원과 고궁은 다양한 속성의 포켓몬을 손쉽게 구하는데 최적의 장소다.
각 지형물을 활용한 포켓스탑은 인근 명소나 대표적인 조형물을 보여준다. 교육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포켓몬 고 덕분에 문화재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책상 앞에서 배우는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를 배운다.
고궁 관계자는 “포켓몬 고 덕분에 주말에도 많은 인파가 몰린다”며 “한한령으로 감소한 중국인관광객의 자리를 포켓몬 고 유저들이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덩달아 인근 매장의 매출도 오른다. 포켓스탑 근처 편의점에는 휴대폰 충전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덕분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커피전문점에는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보조배터리, 방한대, 핫팩 등 3가지 포켓몬 고 필수품은 매장에 비치하기 무섭게 사라진다.
포켓몬 고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는 이미 유명하다. 톰 바라노프스키 미국 베일러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는 “포켓몬 고는 유저들을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게 함으로써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켓몬 고에는 일정거리 이상을 걸어야 알을 부화시키거나 파트너 포켓몬에게 아이템을 받는 시스템이 있다. 이 보상을 얻기 위해 유저들은 많은 거리를 걷는다. 포켓몬 고 유저가 비유저보다 하루 평균 1479걸음 더 걷는다는 스탠포드 대학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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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덕수궁 인근에서 한 시민이 포켓몬 고를 즐기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
그럼에도 포켓몬 고가 단지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롭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무분별한 몰입을 유도하기 때문에 규제 대상으로 봐야한다는 것. 포켓몬 고로 인해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포켓몬 고로 인한 사고는 접수된 바 없다. 다양한 안전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에도 보행 중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사례는 많았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게임인연대 대표)는 “포켓몬 고는 몰랐던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육체·정신적으로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라며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대부분 뭘 해도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다. 그런 부정적 사례보다는 게임을 통해 즐거움과 만족을 얻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