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활짝 웃어봐요. 미소도 요즘엔 경쟁력이에요.”

스튜디오가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복도에서부터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린다. 오전시간임에도 2~3명의 취업준비생으로 보이는 남녀가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것을 눈치챈 이성민 포토그래퍼(34)의 손이 더욱 빨라진다. 

그의 스튜디오는 작지만 커보였다. 비교적 젊은 포토그래퍼다 보니 세련된 내부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스튜디오를 꾸민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벽을 수놓은 그의 사진들은 대기 중인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이색적이고 화려했다.

이성민 포토그래퍼. /사진=김정훈 기자
이성민 포토그래퍼. /사진=김정훈 기자

◆그의 인생 바꾼 ‘사진’과의 만남 

이성민씨는 프리랜서 사진사 겸 더빅스튜디오 대표로 활동 중인 포토그래퍼다. 그동안 국내 유명 외식업체와 오픈마켓의 상품컷 촬영을 전문으로 해오다 4년 전부터 아예 스튜디오를 오픈해 운영 중이다. 이씨의 꿈은 원래 카메라맨이었다. 어릴 적 TV 속 화려한 영상미에 끌린 그는 대학에서 영상학을 전공한 후 SBS 카메라맨으로 입사, 꿈을 향해 나아갔다. 

“학창시절부터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주말이면 공원, 산 등을 돌아다니기 바빴고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렇게 주변 풍경을 눈에 담다 보니 나만의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입사의 기쁨도 잠시, 이씨에게 곧 난관이 닥쳤다. 열악한 업무환경이 바로 그것. 말로만 듣던 ‘현장스태프들의 힘겨운 삶’을 몸소 체험한 후 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라마 촬영보조를 하는데 잠을 이틀 동안 안 재우더라구요.(웃음) 끼니는 컵라면과 김밥으로 매번 때웠구요. 한번은 하루종일 굶은 채 아침 퇴근길 버스에 올라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병원응급실이었어요. 그대로 기절해 종점에서 버스기사가 병원으로 데려다 준 거죠. 이러다 나만의 영상을 만들기도 전에 죽겠다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며칠 후 그는 인생에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을 겪는다. 강원도에서 촬영이 지연되며 하루 정도의 짬이 생긴 그는 카메라팀 선배와 고성으로 꿀맛휴가를 떠났다. 그곳에서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당시 선배는 늘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녔어요. 화려한 녹화용 카메라에 비해 작고 아담한 카메라에 저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죠. 하지만 선배가 찍은 고성 일대 사진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보다 정체된 사진의 미학이 훨씬 아름답게 다가왔거든요. 그때 결심했어요. 내 길은 사진이구나.” 

이씨는 다음날 퇴사했고 광고스튜디오회사에 입사했다. 전보다 회사 규모가 작았지만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회사업무가 없는 날엔 몰래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국내 유명 도시락업체의 사진을 찍기도 했고 세계적인 사진 데이터베이스(DB)회사에 그동안 찍은 사진을 팔기도 했다. 그렇게 3년 후 모자란 비용을 대출받아 나만의 스튜디오를 오픈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그의 나이 31세였다.

/사진제공=이성민 포토그래퍼
/사진제공=이성민 포토그래퍼

◆욕심 버리니 찾아온 성과

스튜디오 오픈 후 이씨는 한가지 고민에 빠졌다. 예술과 돈이 평행선 같다고 느낀 것. 화곡동에 마련한 그의 첫 스튜디오는 건물 배수관이 터지며 물에 잠기는 대참사를 겪었다. 보물1호인 카메라들이 수장됐고 컴퓨터도 물에 잠겨 고객의 사진파일이 모두 소실됐다. 좋아하는 사진도 찍고 돈도 벌려던 이씨의 달콤한 꿈은 점점 멀어졌다. 

“스튜디오가 물에 잠기고 수천만원의 손실을 봤어요. 겨우겨우 돈을 모아 이뤄낸 저의 작은 성이 날아간 거죠. 이후 구로디지털단지 근처로 작업실을 옮겼는데 경쟁업체가 워낙 많다 보니 장사가 안됐어요. 사진 일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밥 먹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구로스튜디오가 사실상 폐업상태에 이르자 그는 좌절감에 빠졌다. 다행히 사진DB업체에서 받은 저작권료로 굶어죽지 않았다는 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금의 양평동 선유도역에 세번째 스튜디오를 냈다. 

“전보다 스튜디오 규모는 작아졌지만 양평동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특히 선유도는 제가 사진영감을 얻을 때 자주 갔던 공원이라 이곳 근처에 스튜디오를 내서 너무 기쁩니다.”

이씨는 예전보다 프리랜서 일을 줄이고 스튜디오 업무에 집중했다. 예술과 돈 모두를 잡으려던 욕심을 버리니 오히려 소소한 성과가 나타났다. 양평동에서 나름 유명사진관으로 입소문을 타며 고객층이 두터워진 것. 특히 주변에 회사가 많아 취업증명사진을 찍으러 오는 고객이 많아져 그들을 공략하는 마케팅전략도 생겼다.

“남성은 증명사진을 찍을 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아요. 하지만 여성은 다르죠. 어떨 땐 포토샵으로 수정하는 데 30~40분이 소요되기도 해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제는 고객 얼굴만 봐도 어디를 고쳐야 할지 훤히 보입니다(웃음).” 

마음의 여유가 생긴 이씨는 올해 노인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일을 계획 중이다.

“어르신들이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비싸서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주민센터와 연계해 영정사진이 필요한 노인에게 무료촬영 후 액자를 맞춰주는 일을 계획하고 있어요. 작은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