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증권사 4곳이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고객의 일임 자산을 예치해준 대가로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가량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은 미래에셋대우 등 일부 증권사가 한국증권금융과 맺은 일임형 CMA(종합자산관리계좌) 관련 약정을 리베이트 행위로 보고 관련 기관에 제재를 결정했다. 제재심의위원회 의결이기 때문에 아직 법적 효력은 없지만 금융감독원장 결제를 통해 내용이 최종 확정되면 결격사유에 해당돼 관심이 모아진다. 끊이지 않는 증권사 리베이트 문제, 매번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에셋대우, 100억원 리베이트… 반복되는 기관제재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0일 열린 제재심에서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 4개 증권사가 한국증권금융과 리베이트 소지가 있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 사이의 CMA 관련 약정을 리베이트 행위로 간주했고 제재 방침을 내렸다. 증권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돈을 한국증권금융에 예치하는 것이 일임형 CMA다. 즉 한국증권금융이 CMA 예치금을 채권 등으로 운용해 이자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러나 한국증권금융이 ‘예치금이 많은 증권사에 정해진 것보다 높은 이자를 적용해 돌려주겠다’는 조건을 걸었서 문제가 됐다. 한국증권금융이 추가 지급하기로 한 이자는 0.03~0.10%포인트로 알려졌다. 리베이트 금액은 특별이자 형태로 고객계좌에 남아 있다가 수수료 형태로 증권사에 흘러 들어갔다.
금융감독원이 문제 삼는 부분은 일부 증권사가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이자를 더 받으면서도 이를 왜 고객에게 돌려주지 않았냐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증권금융은 자금을 맡긴 고객에게 이자를 더 주고 증권사는 고객계좌에서 수수료 명목의 약정된 특별이자를 빼가는 식으로 추가 수익을 챙겼다. 해당 증권사들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긴 것으로 파악됐다. 회사별로는 미래에셋대우 100억원, NH투자증권과 유안타증권 50억원, 한국투자증권 2억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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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대우 본사. /사진제공=미래에셋대우 |
금융감독원은 가장 많은 리베이트를 받은 미래에셋대우에 기관경고, NH투자증권과 유안타증권에 기관주의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을 포함해 4개 증권사 모두에 과태료도 부과할 예정이다. 특히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올 들어 기관주의와 기관경고를 각각 한차례씩 받았고 최근 수년간 기관제재가 반복되면서 초대형 IB(투자은행) 신사업인가와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또한 금융감독원은 증권업계 임원 7명에게 ‘감봉~주의’, 직원 7명에게는 자율조치를 추후에 통보하도록 각 증권사에 전달했다. 제재심에서 결정된 징계안은 이달 중순 금융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증권업계 모럴해저드… 리베이트 징계 미약 지적
증권사의 도를 넘는 커넥션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모럴해저드 지적도 잇따랐다. 지난 2월 금융감독원은 19곳의 증권사와 15곳의 자산운용사 등 총 34곳 금융사 임직원 1100명이 채권매매와 관련해 향응 접대를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대규모 자금이 오가는 주식시장의 특성상 증권사 임직원이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말이 계속 나오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비리 행위가 자주 발생하는 데 비해 처벌 강도가 약하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 매매제한 위반 행위가 적발돼 금융당국으로부터 처벌받은 증권사 임직원 수는 22명으로 집계됐지만 면직은 한명도 없었다. 따라서 솜방망이 처벌이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리베이트의 경우 금융감독원이 해당 증권사에 기관경고와 기관주의 징계를 내렸지만 따로 제재할 권한이나 별다른 규정이 없는 한국증권금융에는 다른 조치를 검토 중이라 밝혀 논란이 심화됐다. 한국증권금융은 약정 미끼로 증권업계의 수수환경을 만든 리베이트의 핵심이지만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마땅찮아 한동안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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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투자증권 본사. /사진제공=NH투자증권 |
◆처벌 형평성 문제… 제공자 규제 강화돼야
이에 리베이트 제공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증권사들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68조에 따라 부당한 재산상 이익의 수령이 금지된다. 그러나 한국증권금융은 일반적인 투자자 대상 리테일영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행령 68조의 적용 범주에서 제외됐다.
한국증권금융이 리베이트 수수환경을 조성한 만큼 반복되는 리베이트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한국증권금융에도 책임이 있다”며 “리베이트 부당이익 수수 행위에 연관된 제공자를 규제할 법적인 근거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리베이트는 한국증권금융과 미래에셋대우로부터 시작됐다. 미래에셋대우가 한국증권금융의 예수금으로 운용되는 MMW(머니마켓랩)에 많은 고객 자금을 예치했고 이에 대한 특별이자를 제공받았다. 이후 일임형 CMA에 많은 고객의 돈을 확보한 대형사일수록 더 많은 금액을 MMW에 예치했고 한국증권금융이 제공하는 특별이자 덕분에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순환고리가 형성되면서 리베이트 관행이 이어졌다.
현재는 특별이자 명목으로 제공된 리베이트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금융감독원의 조치가 있기 전부터 증권사와 한국증권금융 간의 리베이트 문제가 업계에서 불거지자 한국증권금융이 특별이자 제공을 중단하고 지난해 11월 말 MMW형 CMA의 이자지급체계를 일률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