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후보의 공약 하나에 보험사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번 대선공약으로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산재·고용보험 가입 의무화와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보장을 내놨다.
◆“우리도 근로자” vs “개인사업자일 뿐”
특수고용직의 권리보장은 비단 보험사와 보험설계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특수고용직은 애매한 기준 때문에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특수고용직은 보험설계사 외에도 골프장 캐디, 퀵서비스 배달원, 학습지 방문교사, 카드모집인, 건설기계 기사 등이 해당된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특수고용직은 약 229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8.9%를 차지했다. 3년 전 자료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300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수고용직은 본사가 노동을 지휘·감독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계약의 외형은 도급위임계약이거나 이와 유사한 계약이 대부분이다. 특히 개인사업자다 보니 업무상 부대비용은 전부 본인이 부담한다. 당연히 사회보험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사실상 회사에 종속돼 활동하는 근로자지만 근로자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근로자인 듯 근로자 아닌 근로자인 셈이다.
문재인 후보가 이 공약을 내놓은 이유는 300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직 종사자에게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도 문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지난 17대 국회 때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노동자에 포함하는 노조법·산재법 개정안 등이 발의되기도 했다. 특수고용직의 근로자화는 앞으로 실정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특히 회사로부터 부당한 해고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은 보험설계사는 무엇보다도 노동조합 설립을 간절히 원한다. 보험인권리연대에 따르면 설계사 90%가 노동조합 설립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저히 ‘을’의 입장인 설계사들은 노조를 통해 ‘갑’에게 작은 대항이라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기대한다.
이처럼 특수고용직에 대한 법 개정 목소리가 높지만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사실 보험업계에선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3권과 산재보험 보장은 2007년부터 이어온 케케묵은 난제다. 10년간 이 정책이 확립되지 못한 이유는 보험사의 반대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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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후보가 노동3권 보장 관련 법개정을 약속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
설계사의 산재·고용보험 가입은 보험사에 높은 유지비용 부담을 안겨준다. 또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보험사로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하는 부담도 생긴다. 보험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설계사를 관리하는 데 회사 측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설계사들이 무조건 이 정책을 반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설계사는 캐디, 학습지 교사와 달리 회사와 판매계약만 맺을 뿐 설계사 스스로 일정을 조절하고 실적에 따라 본인의 수입이 결정되는 개인사업자라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체결 건당 수수료를 받거나 보험계약유지율에 따라 퍼센티지로 수당을 받는다. 따라서 보험사가 설계사의 산재·고용보험 가입과 정규직에 해당하는 혜택을 줄 경우 비용 증가를 피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설계사의 인센티브 축소 및 수당 제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험업계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전 대한보험인협회) 대표는 “보험사 1년 순익이 4조~5조원에 이르는데 핵심영업인력인 설계사에게 그 정도 비용도 부담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노동권 보장, 설계사에 정말 도움될까
노동권 보장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회사로부터 미운털이 박히는 설계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보험사들은 계약유지율이 낮은 설계사를 해촉하거나 자사형 독립보험대리점(GA)으로 이동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설계사를 길들인다. 물론 노동권이 보장되면 이는 불가능해지지만 회사와의 임금교섭, 복지문제 등으로 대립이 잦아져 장기적으로는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설계사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A보험회사에서 6년째 보험설계사로 활동 중인 나모씨(여·44)는 “보험설계사는 사실상 자영업으로 철저히 개인의 영리추구를 위해 움직인다”며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들 적극적으로 활동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실제로 노조설립을 주도한 사람을 보험사가 해고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결국 칼자루는 보험사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3권 보장 및 산재보험 의무화 공약이 실현되면 보험사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설계사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전히 보험설계사는 보험사의 핵심영업인력이지만 온라인다이렉트보험이 활성화되고 금융복합점포 확장, AI(인공지능)기술 등이 정착되면 설계사조직의 감축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금융그룹 내 은행 판매채널을 가진 보험사는 설계사 확보에 크게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AI기술로 일부 보험사는 이미 설계사 감축에 들어간 상황”이라며 “당장 큰 효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설계사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 법안이 실현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