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장점은 무엇일까. 배출가스를 전혀 내뿜지 않는 친환경성? 주행소음과 진동이 없는 정숙성? (아직까지는) 저렴한 전기사용료? 모두 맞는 말이다. 게다가 엔진오일이나 변속기오일, 에어필터 등 사소한 소모품 교환의 괴로움에서도 해방된다.

나아가 사람이 붐비는 주말 대형쇼핑몰에서도 주차가 쉽다는 점은 운전자 입장에서 엄청난 메리트다. 아직까지는 전기차 판매량이 많지 않은 데다 충전공간이 별도로 마련된 건물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전기차 오너의 특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쉐보레 볼트EV. /사진제공=쉐보레
쉐보레 볼트EV. /사진제공=쉐보레

이번에 시승한 전기차 쉐보레 볼트EV는 여러모로 상징성이 크다. 세련된 컬러와 디자인을 입었고 자동차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전기차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이질감이 적다. 게다가 인증 주행거리가 383㎞ 이상이어서 그동안 전기차의 단점으로 지적된 짧은 주행거리 문제도 해결했다.
◆멀리, 잘 달리는 볼트EV

볼트EV는 잘 달린다. 알루미늄 합금 고강성 전용차체에 리튬이온 배터리시스템과 최고출력 204마력(PS, 150kW), 최대 36.7㎏.m의 토크를 자랑하는 고성능 전기모터를 탑재했다. 차 무게(공차중량)는 1620㎏에 불과하다. 중형세단쯤 되는 차체에 2.0ℓ급 디젤엔진을 장착했다고 생각하면 성능을 가늠하기가 쉽다. 힘이 남아돈다는 얘기다.


전기차는 배터리 패키지의 크기와 위치가 중요하다. 차의 운동성능과 실내공간에 영향을 미쳐서다. 볼트EV는 배터리를 차 바닥에 넓게 설치해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낮은 무게중심을 실현했다. 무게중심이 낮으면 차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줄어 운전자가 차를 다루기 쉬워진다. 자연히 운전이 즐거워지고 탑승자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60kWh용량의 배터리는 LG전자가 만들었다. 288개의 리튬이온 배터리 셀을 3개씩 묶은 96개의 셀 그룹을 10개의 모듈로 다시 구성했다. 열관리시스템에도 신경 써서 배터리 효율을 높이고 수명을 늘리도록 설계했다.

강력한 심장에 낮은 무게중심까지 갖췄다는 건 꽤나 즐거운 차라는 의미다. 전기모터가 직접 바퀴에 힘을 전달하는 만큼 변속할 필요가 없고 저속에서부터 뛰어난 견인력을 발휘하는 게 특징.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초. 제네시스 쿠페 2.0ℓ 터보 모델보다 0.2초 빠른 기록이다. 실제 가속감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뛰어나다. 가속할 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가슴에 강한 압박이 느껴진다. 페달을 조금만 세게 밟아도 여지없이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힘이 장사다. 평소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스포츠모드는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쉐보레 볼트EV. /사진제공=쉐보레
쉐보레 볼트EV. /사진제공=쉐보레

잘 달리는 것만큼 잘 서야 한다. 이동하는 힘(운동에너지)을 전기에너지로 끌어모으는 기술이 핵심이다. 하이브리드차에서 많이 활용 중인 회생제동시스템이 적용됐지만 볼트EV는 훨씬 더 적극적이다. 특히 스티어링휠 뒤에 설치된 패들스위치를 누르는 만큼 회생제동장치가 작동한다. 일반적인 자동차에서 기어를 한단계 아래로 내려 엔진브레이크가 걸릴 때와 비슷한데 여기에 풋브레이크까지 더해진 것 같은 강한 제동력을 자랑한다. 다만 버튼을 오래 누르면 완전히 멈추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편이 좋다. 그래서인지 GM은 ‘리젠 온 디맨드’(Regen on Demand)시스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기어 변속 레버를 L에 놓으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행동만으로도 리젠 스위치를 누른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기존 하이브리드 모델에서의 B모드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볼트EV는 완전히 정차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드는 일반적인 D모드와 달리 가·감속의 반복으로 울컥거림이 심하니 특수한 상황에서만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전기차의 충전은 뭔가 어려울 것 같지만 셀프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본 사람이라면 금세 적응할 만큼 쉽다. 볼트EV는 배터리 용량이 커서 충전이 오래 걸린다. 급속충전소에서 80%를 충전하는 데 1시간, 완속충전기로는 9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스마트폰처럼 수시로 충전한다면 시간은 훨씬 단축된다.


◆기본기와 첨단 감성 담았다

작아보이는 겉모양과 달리 실내공간은 의외로 넉넉하다. 요즘 많이 팔리는 소형 SUV와 큰 차이가 없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형SUV 티볼리의 길이x너비x높이는 4195x1795x1590(㎜), 볼트EV는 4165x 1765x1610(㎜)로 크기가 비슷하다. 앞바퀴부터 뒷바퀴 사이 거리인 휠베이스는 2600㎜.

2열 바닥은 센터터널이 없어 평평하다. 뒷좌석에서는 크게 불편한 점이 없지만 2열 헤드룸이 넉넉하지 않아 키가 큰 사람이라면 머리가 닿을 수 있겠다. 트렁크는 깊고 활용성이 좋다. 트렁크 바닥 칸막이를 통해 높이조절이 가능하고 독립된 수납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트렁크공간을 늘릴 수 있어 길고 큰 짐도 거뜬히 실을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포인트는 센터페시아의 10.2인치 대형 터치스크린과 8인치 디지털 클러스터다. 쉐보레 마이링크(MyLink) 인포테인먼트시스템과 애플 카플레이를 포함한 첨단 커넥티비티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전기에너지 모니터링기능으로 배터리 효율과 주행스타일 분석·평가까지 가능하다.

최신 안전품목도 대거 적용됐다. 차선이탈경고와 함께 차선유지를 도와주는 시스템, 저속 자동긴급제동시스템,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시스템, 스마트 하이빔 등 능동형 안전시스템으로 무장했다. 타이어에 구멍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해당 부위를 메워 공기누출을 막는 미쉐린 셀프-실링 타이어도 장착됐다.


쉐보레 볼트EV. /사진제공=쉐보레
쉐보레 볼트EV. /사진제공=쉐보레

◆보급형 장거리 전기차 시대 열다

세련된 디자인과 강력한 성능을 갖추고 넉넉한 공간을 바탕으로 장거리 주행능력까지 겸비한 차를 이탈리아어로 ‘그란투리스모’라 칭한다. 줄여서 GT, 영어로는 그랜드투어러라고도 한다. 수억원짜리 스포츠카나 럭셔리카가 많다.
조금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이번에 시승한 쉐보레의 볼트EV를 전기차 계의 그란투리스모라 칭하고 싶다. 차를 타보기 전까진 단지 CUV나 핫해치쯤으로 생각했지만 단지 그렇게 부르기엔 많이 아까운 차여서 그렇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컬러와 디자인,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 성능에 그동안 ‘동네차’였던 전기차가 ‘전국차’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할 상징성까지 갖췄으니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다만 아쉽게도 올해 판매물량은 이미 소진돼 구입하려면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