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4년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2013년 7월 구속 기소된 후 ‘실형선고→투병생활→특별사면’이라는 드라마틱한 시간을 보내온 그가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17일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밝은 표정으로 ‘경영복귀’를 선언했다. 또 ‘그레이트 CJ’를 넘어 ‘월드베스트 CJ’로 그룹을 키우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CJ 경영시계 다시 째깍째깍
이 회장은 이날 경기도 수원시 광교에서 열린 ‘CJ블로썸파크 개관식’ 겸 ‘2017 온리원 컨퍼런스’에 참석해 임직원을 향해 “걱정해주신 덕분에 건강을 많이 회복해 4년 만에 여러분 앞에 섰다. 정말 고맙다”며 “2010년 제2도약 선언 이후 획기적으로 비약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그룹 경영을 이끌 제가 자리를 비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글로벌사업도 부진했는데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부터 다시 경영에 정진하겠다”며 “그룹의 시급한 과제인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미완의 사업들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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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임한별 기자 |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비상경영위원회가 해체되고 그를 중심으로 CJ그룹이 빠르게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실제 이 회장은 “2020년 매출 100조원을 실현하는 ‘그레이트 CJ’를 넘어 2030년에는 3개 이상의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되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월드 베스트 CJ’를 만들어야 한다”고 새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CJ는 올해 5조원을 투자하고 2020년까지 물류·바이오·문화콘텐츠 등의 분야에 총 3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비전 달성을 위해 이 회장 공백기 소극적이었던 기업 인수합병(M&A)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직 이 회장의 건강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점이 변수다. 공식적 경영복귀 자리에 휠체어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 그는 기념수인 오엽송에 흙을 뿌리기 위해 휠체어에서 내려 두발로 약 3분간 서 있었지만 삽을 뜨는 과정에선 몸이 불편한 듯 주변 관계자의 도움을 받았다.
CJ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의 건강은 70%가량 회복된 상태로 아직 혼자서 모든 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는 발과 손의 근육들이 점점 위축돼 힘이 약해지며 모양에도 변형이 발생하는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이하 CMT)를 앓고 있는데 근본적 치료법이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계 안팎에선 건강에 위기를 느낀 이 회장이 장녀 이경후 상무대우(32)와 장남 이선호 부장(27)으로의 승계를 서두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
이 회장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국내 재계서열 1위 삼성가의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밀려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지 못하며 1983년 첫 직장도 삼성이 아닌 씨티은행에서 시작했다.
이후 이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손이 왜 남의집살이를 하느냐”는 호통에 1985년 당시 삼성그룹 주력사인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그룹의 품에서 그는 제일제당 경리부 과장, 기획관리부 부장,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 제일제당 상무·부사장·부회장 등을 거쳐 2002년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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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회장 취임 직후 사명을 CJ로 바꾼 그는 본인의 경영능력을 입증하며 식품회사에 불과했던 회사를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에서 분리될 당시(1996년) 2조원이 채 안됐던 CJ 매출은 지난해 31조원으로 15배 이상 늘었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삼성물산 직원이 이 회장을 미행하다 발각되는 사건도 있었고 부친이 이건희 회장과 상속재산 반환 소송전을 벌이기도 하는 등 삼성과 자주 부딪혔다.
박근혜정부 시절엔 노골적인 탄압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 청와대의 퇴진 압박을 받고 경영에서 물러났으며 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정권으로부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내려놓으라는 압력을 받고 사퇴했다. 손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좌파성향’을 바꿔라”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이 구속된 이후에는 불행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2013년 8월 만성신부전증으로 부인의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거부반응을 일으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CMT도 악화돼 걷기, 젓가락질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혼자서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이 시기 그는 재판에 대한 스트레스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런 가운데 2015년 8월 부친이 별세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장남과 결혼한 며느리가 혼인 7개월 만에 미국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 회장의 삶을 축구경기로 표현한다면 평범한 식품회사를 신한류를 선도하는 문화기업으로 진화시킨 1996년부터 2013년까지가 전반전, 투옥과 입원이 이어졌던 지난 4년간이 하프타임일 것이다. 이제 후반전의 휘슬이 울렸다. 필드로 돌아온 이 회장이 화려한 해트트릭을 작성할지 주목된다.
▲1960년생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제일제당 경리부 과장 ▲제일제당 기획관리부 부장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 ▲제일제당 상무 ▲제일제당 부사장 ▲제일제당 부회장 ▲CJ그룹 회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