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 출산장려금 100만원, 둘째 300만원, 셋째 500만원 지원.’
‘자녀 서른살까지 양육수당 매달 5만원 지원.’
지난 4월 부동산경매정보기업 지지옥션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회사가 정규직·계약직 전직원 150명에게 출산·육아지원 소식을 전한 것. 정부가 지원하는 출산장려금이 10만~50만원이고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받을 수 있는 양육수당이 한달 10만~2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지원이다. 한달 후 출산하는 예비엄마, 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빠, 아들이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둔 임원까지 50명 넘는 직원이 혜택을 받는다. 5월부터 지급이 시작돼 4개월째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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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주 지지옥션 회장. /사진제공=지지옥션 |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창업주 강명주 회장(74)이다. 강 회장은 “창립 34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하다 나온 방안”이라며 웃었다. “저출산문제가 심각하다는데 회사 다니며 힘들게 자녀를 양육하는 젊은 직원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어요. 정부 양육수당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만 지원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자녀가 서른살이 돼도 고생하잖아요.”
◆작은결혼식 관심, 신혼여행비 지원
강 회장은 오래전부터 보육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5년 전부터 유치원을 운영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두 아들딸과 4명의 손주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안쓰러웠고 더 많은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은 불쌍할 정도로 어른보다 바쁘죠. 인성교육이나 창의적 교육은 도외시하고 높은 성적만 요구하는 사회풍토가 아쉬웠어요. 그래서 교육사업을 시작했고 정말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강 회장은 최근 변화하는 결혼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에는 자사 직원이 아니라도 경주로 신혼여행 가는 신혼부부에게 호텔숙박권을 제공해 화제가 됐다. 경주에 있는 지지옥션의 자회사 지지호텔에 묵을 수 있는 숙박권이다. 강 회장은 “요즘 젊은 부부 대부분이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던데 비용이 비싸지 않느냐”며 “국내에도 좋은 여행지나 문화유적지가 있으니 아끼자는 취지로 무료숙박을 운영했고 수십명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회사 규모에 비해 높은 수준의 복지나 지원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궁금했다. 그는 “회사가 이만큼 성장한 데는 직원들의 노력이 가장 컸고 대가 없이 베풀면 결국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원금 규모가 부담이 느껴지는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미안하고요. 해외 골프여행 한번 덜 가면 그렇게 아낀 비용으로 직원 4명의 1년치 양육수당을 줄 수 있어요. 반면 기부를 통해 회사가 얻는 기회가 더 많았습니다. 지지옥션은 정보제공과 자산운용을 하는 회사인데 기부하는 기업의 정보니까 믿을 만하다는 신용이 생겼고 이미지도 좋아졌거든요.”
지지옥션의 주요사업은 경매물건과 관련한 토지·교통편·주변환경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서비스하는 것이다. 강 회장은 올해로 10년째 지지옥션배 바둑기전을 주최하며 연간 2억5000만원을 후원하고 있다.
◆직원 3분의1 ‘100% 재택근무제’ 시행
지지옥션은 전직원의 3분의1에 달하는 약 50명이 100% 재택근무를 한다. 1943년생으로 70대 중반인 강 회장이 실리콘밸리에나 어울릴 법한 재택근무제를 채택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옛날에는 일요일도 일하고 토요일도 일했는데 언제부턴가 주5일근무제를 한다잖아요. 이렇게 많이 쉬어서 돈은 언제 벌지? 저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직접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직원들이 많이 쉰다고 회사 운영이 안되면 그건 경영자의 잘못이라는 것을요.”
강 회장의 말에 따르면 지지옥션에는 경기도 안산과 서울 본사를 매일 출퇴근하던 직원이 있었다. 하루 4시간을 지하철과 길에서 소비하느라 늘 피곤에 절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재택근무제를 시행한 후로는 이 직원의 건강뿐 아니라 업무성과가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는다고 일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은 변해야 해요. 영업사원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재택근무가 효율적인 업무 담당자는 굳이 사무실로 출퇴근할 필요가 없죠. 모든 직원이 다 재택근무를 할 수는 없겠지만 기업인이 사고를 바꾸면 많은 분야가 달라질 겁니다.”
최근 정부가 육아휴직 급여를 늘리기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투자하는 등 적극적인 육아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다. 맞벌이부부는 육아공백에 따른 보조양육자 비용이 발생하고 외벌이부부는 저임금과 집값·물가 상승에 따른 소득공백이 생긴다. 이를 정부 지원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은 부모의 고민은 깊어간다.
강 회장은 “정부가 저출산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나라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기업들도 함께 나서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1호(2017년 8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