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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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5년을 선고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횡령·재산 국외도피·범죄수익 은닉·국회 위증 등의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내린 판결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와 직결된 국내 재계서열 1위 대기업 총수의 ‘세기의 재판’ 1라운드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무죄를 주장했던 이 부회장과 삼성 측은 충격에 휩싸였다. 삼성그룹 79년 역사상 총수가 구속되고 실형까지 선고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3심이 남았지만 선장을 잃은 삼성호의 앞날은 안갯속이다.


◆이 부회장 징역 5년, 구심점 잃은 삼성

지난 8월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고위관계자 5인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의 혐의 중 국회 위증을 제외한 4개 혐의에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삼성그룹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또 삼성전자 박상기 전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전무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의 핵심쟁점인 부정청탁의 존재 유무와 관련해 개별현안(승계지원)에 대한 청탁은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작업을 추진한 사실은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의 경우 승계작업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인 부정청탁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의 자금지원 등은 무죄로 봤다.
요약하면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횡령·재산 국외도피·범죄수익 은닉 혐의는 일부 유죄, 국회위증은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양형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범행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향유할 지위에 있다”며 “삼성그룹의 사실상 총수로 다른 피고인들(최지성·장충기·박상기·황성수)에게 승마·영재센터 지원 등을 지시하고 각 범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 이 사건 범행에 실제 가담 정도나 범행 전반에 미친 영향이 상당히 크고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허위증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공여 범행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렸다”며 “대통령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 뇌물공여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소 참작할 만한 사실이 있고 청탁의 결과로 자신이나 삼성그룹에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삼성 측 송우철 변호사는 선고 직후 항소의사를 밝혔다. 송 변호사는 “상고심에서는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법률가로서 1심 판결 법리판단과 사실인증 모두를 수긍할 수 없고 유죄로 선고된 부분도 전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특검 측은 “재판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항소심에서 상식에 부합하는 합당한 중형이 선고되고 일부 무죄로 선고된 부분이 유죄로 바로잡힐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1심 선고결과를 충분히 검토·반영해 뇌물수수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뇌물사건 공판에서 효율적인 공소유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머니포커S] '이재용 없는 삼성' 앞날은?

◆투자위축·계열사간 시너지 실종 우려
재계 안팎에선 이번 판결로 총수 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해진 삼성이 장기적으로 투자위축, 계열사간 시너지 확보 어려움 등을 겪을 것으로 내다본다. 단기적으로는 전문경영인이 주어진 사업을 잘 영위하겠지만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의 경우 결정이 미뤄져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대처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글로벌사업 비중이 큰 삼성이 해외에서 ‘비리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대외 이미지가 실추된 것도 부담이다. 앞으로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이나 다른 나라 정부 허가를 받는 일이 필요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국제기구와 주요 선진국은 기업의 부패방지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삼성은 지난 3월 그룹 경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며 계열사별 독자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총수가 부재하면 대기업집단이 갖는 장점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계열사별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은 현 시스템으로도 가능하지만 대규모 투자와 같은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자(CEO)가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소극적 경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총수 공백이 길어지면 삼성그룹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너 리더십 공백으로 인한 삼성그룹의 투자위축이 국내 기업 전반의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에도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의 행보는 다른 대기업의 롤모델 역할을 한 경우가 많았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로 가뜩이나 좋지 않은 대기업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대형프랜차이즈 회장과 제약업체 회장 등이 갑질 논란으로 세간의 질타를 받은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부정적 여론 확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반기업 정서가 심해지면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압박이나 규제수위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3호(2017년 8월30일~9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