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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5시30분, 전조등을 밝히며 출발하는 홍콩 사이클로톤 50㎞ 참가자들. /사진제공=홍콩관광청 |
지난 8일 오전 3시23분, 도어벨 소리에 꿀잠을 설쳤다. 약속한 3시30분보다 무려 7분 이른 시간이다. 예정보다 일찍 깨운 것을 탓할 겨를도 없이 호텔 측이 준비한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출전 결의가 앞선 까닭일까. 도시락의 대부분을 차지한 퍽퍽한 빵 따위가 대수랴. 처음 달릴 낯선 코스인 데다 보급이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뱃속으로 빵을 욱여넣었다. 이윽고 3시30분에 맞춰진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7분의 기왕지사, 고층빌딩을 가르는 홍콩 '사이클로톤'(Cyclothon)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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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이클로톤 참가들이 여명 속에 빅토리아항의 주요대교의 하나인 칭마브릿지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홍콩관광청 |
◆5000여명 참여한 글로벌 이벤트
동도 안 튼 오전 4시30분, 자전거를 끌고 호텔을 나섰다. 출발시간인 5시30분까지는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안내에 따라 출발지인 주룽의 침사추이 솔즈베리로드로 향했다. 빅토리아항의 습한 기운 때문일까. 후텁지근한 날씨에 온몸은 이미 땀범벅이다. 스타트라인과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자전거를 세웠다. 앞선 자리를 얻으려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린 참가자가 많아서다. 50㎞ 라이딩 참가자만 헤아려도 2600명이 넘는다.
서로 키재기 경쟁을 하듯 들어선 고층빌딩, 그리고 그 사이 숨통을 겨우 터주는 듯한 비좁은 도심 도로. 홍콩의 지형과 도로 여건은 자전거 친화적이지 않다. 경사로가 심한 산비탈에 생활공간이 자리했고 주요 도심의 도로 역시 늘 혼잡해서다. 따라서 생활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의 역할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년간의 기다림 끝에 밤을 꼬박 새웠을 얼리버드들의 열의. 도심을 맘껏 질주하는 사이클로톤은 홍콩 자전거족에겐 1년 중 단 하루만 열리는 일종의 해방구다. 이들뿐이랴. 한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등 가까운 아시아권에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 먼 영미권까지 세계 각지의 사이클 동호인들이 고층빌딩 숲을 가르는 이색 라이딩 이벤트에 모였다. 날아간 7분간의 꿀잠이야 이러한 열기 앞에선 돌이켜볼 소재거리도 아니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홍콩 사이클로톤. 홍콩관광청과 대기업인 선홍카이가 자전거 활성화를 통한 시민 건강증진과 환경가치 제고, 사이클링 레포츠와 연계한 관광시장 다변화를 꾀하는 차원에서 개최한다. 지난해에는 국제대회로 승격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번 사이클로톤 참가인원은 총 5000여명이다. 50㎞와 30㎞ 수준별 라이딩, 어린이와 가족단위의 자전거 놀이, 세계 유수의 프로팀이 출전하는 국제사이클연맹(UCI) 1등급 도로경기(홍콩챌린지), 남녀 오픈 경기와 팀타임트라이얼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50㎞와 30㎞에는 각각 2600여명과 1500여명이 참가했다. 홍콩챌린지에는 '오리카-스캇 그린엣지' 등 17개팀(12개국)이 출전, 갤러리들의 환호 속에 도심을 질주했다.
50㎞ 구간은 침사추이를 출발해 충칭브릿지, 칭마브릿지, 팅카우브릿지, 스톤커터스브릿지 등 빅토리아항의 주요대교 4곳을 넘나드는 코스다. 참가자들이 들떠있는 것은 이 코스가 이날 외엔 자전거를 탈 엄두조차 못내는 곳들로 구성돼서다. 또 완주시간이 정해져 있어 긴장감도 엿보인다. 5시30분에 출발해 8시까지 들어와야 하고 코스 중간 컷인 시간도 정해져 있다. 자칫하다간 회수차량에 이끌려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두바퀴' 자전거를 강조한 사이클로톤. 불현듯 인도양에서 이는 열대성저기압인 사이클론이 머릿속에 맴도는 사이 환호성이 터졌다. 출발 신호가 떨어진 것. 여명 속에 사이클 행렬이 스타트라인을 쏜살처럼 빠져나갔다. 마치 목표한 황금어장을 향해 일제히 물살을 헤치고 나가는 선단처럼 사이클들이 먹잇감을 찾듯 제각각의 전조등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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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통제된 고속도로를 달리는 홍콩 사이클로톤 참가자들. /사진제공=홍콩관광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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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빌딩 숲을 배경으로 국제사이클연맹 도로경기(홍콩챌린지)를 펼치는 홍콩 사이클로톤. /사진제공=홍콩관광청 |
◆1년에 단 한번 즐기는 파노라마
남중국해의 습윤한 공기가 땀샘을 자극할수록 참가자들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1년에 단 한번 주어진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려는 듯 페달링도 경쾌했다. 특히 빅토리아항과 홍콩 전반을 조망하는 최고의 뷰포인트인 칭마브릿지에서의 탄성이 끝없이 이어졌다. 자동차만이 허락된 곳에서의 라이딩은 이 시간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1시간 남짓 달렸을까. 빅토리아항과 홍콩섬, 주룽을 한 눈에 담는 칭마브릿지에서 속도를 줄였다. 자연과 사람이 빚어낸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쳤다. 이 장관을 마주하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안전요원이 대기 중인 곳에 아예 자전거를 갖다 댔다. 안전을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는 대회규정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40분가량을 머물렀다. 도착지까지는 50분 남았다. 남은 20㎞야 식은 죽 먹기니 완주가 목표인 참가자들을 앞세우곤 8차선 도로를 전세냈다.
매일 트래픽으로 몸살을 앓는 거대도시의 도로를 '룰루랄라' 홀로 달리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뒤따라온 회수차량에 몸을 싣고 7분의 기왕지사와 2시간 남짓의 궤적을 돌려봤다.
해상대교, 고속도로 등 홍콩의 주요 교통로를 완전 통제한 상태에서 열린 사이클로톤은 고층빌딩 숲속과 풍광이 빼어난 빅토리아항의 주요 대교를 넘나들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사이클로톤의 가장 큰 특징은 대규모 사이클링 이벤트가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서 이뤄진다는 점. 교통 트래픽이 비교적 한산한 도심 외곽에서 열리는 일본이나 대만의 그것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그런 까닭에 세계인이 찾는 국제 이벤트로 빠르게 성장했다.
아울러 이날 오후에 펼쳐지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도심 100㎞ 도로경기(크리테리움)도 다이내믹한 홍콩의 볼거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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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이클로톤 개최지인 주룽 침사추이 '스타의거리'에서 바라본 홍콩섬 야경. 이곳에선 매일 저녁 8시 레이저쇼 향연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볼 수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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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천국 홍콩에서는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사진은 '피카다'(Picada)의 라틴 요리. /사진=박정웅 기자 |
◆사이클로톤과 연계한 홍콩 여행팁
사이클로톤은 빅토리아항과 인접한 주룽반도 침사추이 일원에서 열린다. 빅토리아항 맞은편에는 홍콩섬이 있다. 주룽 동침사주이역 또는 침사추이역 인근에는 숙소가 많다. 사이클로톤을 개최하는 선홍카이 소유의 '더 로얄가든'은 개최측 인사들이 머무른다. 출발지 바로 앞 '스타의거리'에서 매일 저녁 8시 홍콩섬 고층빌딩의 레이저쇼 향연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감상할 수 있다.
걷거나 지하철로 홍콩여행의 진수를 체험할 수도 있다. 침사추이역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조단역, 야우마테이역, 몽콕역이 이어진다. 몽콕역까지 이어진 네이던로드 양쪽엔 볼거리가 많다. 몽콕역에는 여성을 위한 레이디스마켓이 있고 조던역과 야우마테이역 사이에는 남성이 좋아할 야시장(템플스트리트)이 있다.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지하철로 빅토리아항을 건너면 핫플레이스 가득한 홍콩섬이다. 셩완, 센트럴, 소호, 노호, 롼콰이퐁, 빅토리아피크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 많다.
사이클로톤 참가자라면 10월 말 '와인 앤 다인 페스티벌'과 11월 '음식축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축제에 참가하는 미식전문가가 사이클리스트를 환영한다. 대표적인 곳이 10~11월 제철 식재료인 털게를 내놓는 침사추이의 '예 샹하이'(Ye Shanghai)와 '키 나인 드래곤스'(Qi-Nine Dragons)다. 예 샹하이는 원재료의 본맛을 살린 담백함을, 키 나인 드래곤스는 쓰촨성의 매운맛을 강조한다. 또 홍콩섬의 '피카다'(Picada)는 남미의 다양한 음식을 내놓는데 입과 눈, 귀가 호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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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거나 지하철로 홍콩여행의 진수를 체험할 수도 있다. 침사추이역에서 북쪽 네이던로드로 향하면 조단역, 야우마테이역, 몽콕역이 이어진다. 몽콕역에는 여성을 위한 레이디스마켓(왼쪽)이 있고 조던역과 야우마테이역 사이에는 남성이 좋아할 야시장(템플스트리트, 오른쪽)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
☞ 본 기사는 <머니S> 제510호(2017년 10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