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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 수많은 인파 속 열차에서 내리는 한 무리. 역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환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탕, 탕, ··· , 탕' 총 7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중 3발의 총을 맞은 남성이 쓰러졌고 그 총을 쏜 남성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체포된 남성은 체포되는 순간까지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안중근 의사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이다.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지만 이토 히로부미 암살 배경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1910년 2월14일. 일본 재판부는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결국 안 의사는 1910년 3월26일 순국했다.
숭고한 애국정신과 평화 사상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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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1862~1927)의 의연함도 후세에 감동을 주고 있다. 조 여사는 아들에게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는 뜻을 전한다.
안중근 의사는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며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다.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뤼순감옥 근처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손가락을 잘라가며 일제에 항거할 것을 맹세했던 그의 정신과 얼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용과 호랑이의 형세"… 110년 만에 한국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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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며칠 전 남긴 유묵(遺墨) '용호지웅세기작인묘지태'(龍乕之雄勢豈作蚓猫之熊)가 19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안 의사 유묵 중 최고가 기록이다. 낙찰자는 국내 소장가로, 작품은 113년 만에 고국 품에 안기게 됐다.
해당 유묵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듯한 내용을 시원스럽고 당당한 필치로 쓴 뒤 옆에 지장을 찍은 작품이다.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가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 따위의 자태를 일삼으랴! 경술년 3월 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이라고 적혀있다.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은 1910년 2월14일부터 3월26일 순국하기 전까지 감옥에서 많은 글씨를 썼는데 대부분은 일본인 관리와 간수들의 요청에 따라 써준 글씨로 알려졌다. 이 작품 역시 비슷한 경위로 작성돼 일본인에게 선물됐고 이후 교토의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작 시기는 1910년 3월로, 사형 집행을 목전에 둔 시기임에도 안 의사의 기개와 결의가 돋보인다.
작품은 그동안 국내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데다 기존 작품들과 필체도 미묘하게 달라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