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중략)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김소월 진달래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5.25~5.50%인 기준금리를 지난해 9월 이후 5차례 연속 동결한 이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김소월의 '진달래 꽃' 시가 적힌 넥타이를 매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이창용 총재는 지난 2022년 11월 기준금리를 연 3.0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상했을 때에도 진달래꽃 구절이 적힌 회색빛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바 있다.

당시 이 총재는 "금리 부담으로 고통받는 차주들을 위한 위로"라고 설명했다. 이어 약 1년4개월만에 이 총재가 같은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은 향후 고금리 기조가 더 이어질 것이란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연준과 한국은행 등 두나라 중앙은행 수장들은 모두 물가와 관련해 '울퉁불퉁'이라는 표현을 쓰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안정 목표치인 2%에 이르는 라스트마일(마지막 구간)의 위험성과 변동성 확대 등을 경고하고 있다.


연준은 19∼20일(현지 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했다. 한국(3.50%)보다 여전히 2.00%포인트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준은 지난해 9·11·12월과 올 1월에 이어 이달까지 5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최근 물가 상황에 대해 "우리는 지난 2개월(1∼2월)간 울퉁불퉁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지표를 봤다"며 "앞으로도 울퉁불퉁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파월 의장은 "과거 통화정책 사례는 금리를 섣불리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가르쳐준다"고 덧붙였다.

연준이 이날 공개한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를 보면 올해 말 금리 전망치 중간값이 4.6%로 제시돼 기존 전망을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미 기준금리가 5.25∼5.50%인 점을 감안하면 연내 0.25%포인트씩 3차례 걸쳐 금리를 내릴 것이란 관측이다.

하지만 내년 말 금리 전망지 중간값의 경우 기존 3.6%에서 3.9%로 0.3%포인트 높아졌다. 2026년 말 역시 2.9%에서 3.1%로 0.2%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연준이 연내 금리 인하를 시작하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향후 금리 인하 속도는 가파르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물가와 금리에 대한 연준의 기조는 한은과 일맥상통한다.

앞서 이창용 총재도 지난달 22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의 직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물가가 지금 굉장히 울퉁불퉁한 길을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부분 금통위원은 아직 금리인하 논의를 시기상조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지난 14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올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 상승률이 점차 둔화해 연말에는 2%대 초반에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물가 안정기 진입의 마지막 과정에서 유의할 리스크가 남아있다.

한은은 "섣부른 긴축 기조 선회가 정책 신뢰를 저해하고 금융 시장에 부채 증가, 위험 쏠림의 시그널을 제공할 위험에 유념해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한 기간 이어가되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로 둔화하고 있지만 기조적 물가 지표인 근원물가 상승률로 수렴해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기게 아직 이른 데다 유가와 신선식품 가격 등에 따라 물가가 크게 출렁일 수 있는 만큼 한은 역시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 1월(2.8%) 6개월 만에 2%대로 떨어졌다가 한 달 뒤 2월(3.1%)에 다시 3%대로 올라섰다.

다음 달 12일 열리는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10차례 연속 동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과 연준은 라스트마일 리스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물가안정기로의 진입에 실패했던 사례를 봤을 때 라스트 마일 리스크에 대한 부주의에 기인하는 경우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라스트 마일 리스크란 가격조정 모멘텀과 인플레이션 재발 위험이 상존하는 가운데 기저효과로 인플레이션은 안정되어 보이는 상황을 말한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6월에 금리를 인하하면 한은은 7월부터 연내 두 차례 금리 인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