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17일 '롯데, 제2의 대우그룹으로 공중분해 위기'라는 루머가 SNS를 타고 급속히 퍼졌다. 39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차입금과 롯데건설 미분양,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12월 초 모라토리엄 선언설이었다.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자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롯데쇼핑은 18일 낮 12시30분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 관련 루머는 사실무근"이라고 공시했다. 적극적 해명에도 이날 세 회사의 주가는 하락하며 장을 마쳤다. 이후 롯데는 오후 5시40분쯤 "수사 의뢰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대응에 나섰다. 21일 오전 9시쯤 "그룹 전체 부동산 가치 56조원에 가용 예금은 15조4000억원"이라면서 안정적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롯데그룹의 적극적 진화에 이들 계열사의 주가는 진정되는가 싶더니 등락을 거듭했고 루머 유포 전일(15일) 종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문제는 온라인에 떠도는 풍문에 롯데가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국내 재계 서열 6위(공정위 지정 기준) 대기업집단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유통·식음료·서비스 전문기업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다.
롯데그룹은 2년 전에도 '롯데건설 부도설'로 홍역을 치렀다. 2022년 10월 유포된 루머는 롯데건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롯데캐피탈이 연 15%의 기업어음을 발행했으나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진 셈이다.
이번 루머 역시 낭설이었음을 안팎에서 확인한 롯데로선 억울한 면도 있겠다. 다만 자본시장에서는 롯데그룹 차입금 규모에 대해 우려 섞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올해 9월 말 롯데지주, 호텔롯데, 롯데케미칼 등 롯데 3개사의 연결기준 총차입금(리스부채 포함)은 35조2014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1조8900억원 이상 증가했다.
증권가에서 사설 정보지(지라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롯데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휘둘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번 사건을 해프닝으로 치부하기가 꺼림칙한 것은 이 때문이다.
롯데가 어떤 기업인가. 제과, 음료, 백화점을 중심으로 국내 소비문화를 변화시킨 것을 시작으로 롯데리아, 롯데월드 등 새로운 먹거리, 즐길거리로 삶의 질을 끌어올렸다. 변변찮은 호텔이 없어 국제행사 유치에 애를 먹었던 산업 성장기, 롯데호텔은 국격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롯데월드타워 5층에는 '상전 신격호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2020년 타개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초기 집무실을 재현했는데 생전 신었던 낡은 구두와 함께 벽면에 걸린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고 적힌 액자가 시선을 붙잡는다. 고인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이 말은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 수행원 없이 혼자 서류가방을 틀고 비행기를 탔을 정도로 화려한 것을 싫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주의 철학과 같이 롯데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실리에 집중하는 기업이었다. 특유의 무차입 경영으로 IMF 외환위기도 꿋꿋하게 이겨냈다. 실리 중심의 경영은 국민들에게 '롯데=탄탄함'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롯데가 창업주 거화취실의 철학을 되새겨 이번 사건을 곱씹어보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