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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경영인’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알짜배기 계열사들의 매각에 사재출연까지 주저하지 않고 단행한 것. 그룹의 재무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던진 '승부수'다.
일각에선 그의 이번 결단을 두고 ‘쫓기듯 내린 결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주요 계열사 매각과 사재출연 결정은 어쩌면 뚝심경영을 일궈낸 그만의 ‘묘수’가 아닐까. 가족이나 친지, 동업자의 지원 없이 창업에서부터 한때 재계 12위까지 그룹을 올려놓은 김 회장의 경영수완을 되짚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집념과 추진력 통한 ‘뚝심경영’
김 회장이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건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그는 특유의 집념과 추진력을 통해 1970년대 말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러 있던 동부를 재계 10위권까지 끌어 올렸다.
김 회장의 ‘뚝심’있는 경영은 계속됐다. 주변사람들은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기업들을 인수할 때마다 그를 만류했다. 누가 봐도 가능성 없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회사의 몸집을 키우면서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사업다각화에 있어서도 그의 집념과 추진력은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한 뒤 4000여억원을 투자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1998년에는 1조3000여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냉연공장을 건설했다.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성장한 현재 동부제철의 전신이다. 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을 인수해 현재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를 탄생시켰다.
이후에도 김 회장은 잇단 인수합병을 통해 2007년 27개 수준이었던 그룹 계열사를 64개까지 확장시켰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재무여건 호전을 위해 몸을 추스를 때도 외형 확장이라는 카드를 꺼내며 위기 극복에 나섰다.
이 같은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이번 유동성 위기에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다만 이번엔 밀어붙이기가 아닌 후퇴하는 결단을 내렸다. 주요 계열사 매각에 사재까지 내놓은 이례적인 승부수다.
◆주요 계열사 내놓은 ‘선제적 대응’
애지중지하던 ‘30년 반도체 신화’까지 뒷전으로 밀어내며 필생의 배수진을 친 것을 김 회장의 ‘뚝심경영’에서 나왔다고 보기엔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선제적인 그의 결단이 현재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유동성 위기에 몰렸음에도 금융부문과 건설, 철강 등 비금융부문을 모두 끌어안기 위해 차입금을 늘리다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기업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김 회장은 1997년 동부하이텍을 설립하며 시스템반도체라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동부하이텍에 대한 그의 애착은 대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도 김 회장은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하면서 동부하이텍을 지켜냈다. 하지만 14년 연속 적자로 고전하다가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는 동부하이텍을 그는 과감하게 포기했다.
동부메탈 매각은 동부하이텍보다 어쩌면 더 힘든 결정이었을 수 있다. 동부메탈 동해공장은 김 회장의 부친인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 운영했던 곳이다. 하지만 그는 부친의 땀이 서려 있는 계열사 역시 회사의 생존을 위해 내놨다.
뿐만 아니라 김 회장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항만, 동부발전당진 지분, 동부익스프레스 지분, 동부팜한농 유휴부지 등까지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야말로 초고강도 자구책을 내놓은 셈이다.
웅진그룹, 동양그룹, STX그룹 등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들이 ‘재무개선을 위한 오너의 결단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애지중지하던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까지 내놓은 건 현실적이면서도 과감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며 “오너의 잘못된 판단은 일반 투자자와 은행권까지 피해가 번지는데 그가 과감한 결단을 내리면서 동부그룹에 대한 신뢰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초고강도 자구책에 시장 반응 ‘청신호’
오는 2015년까지 3조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완전히 졸업하겠다며 꺼낸 김 회장의 초고강도 카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 살을 깎아내긴 했지만 그룹 계열사들의 유동성 사정은 숨통을 터가는 분위기다. 일부 오너들은 비자금을 조성해가며 회삿돈 빼돌리기에 급급하고 있지만 김 회장은 자신이 가진 사재 1000억원을 추가로 꺼내 시장을 진정시켰다.
실제로 지난 11월17일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을 매각하는 구조조정안을 내놓으면서 다음 날 그룹 계열사는 국내 증시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동부제철의 주가는 2990원으로 15%(390원)나 폭등했다. 동부건설 주가도 3510원으로 14.89%(455원) 급등했다. 동부증권은 3600원으로 6.82%(230원) 상승했다. 동부화재 역시 5만300원으로 1.41%(700원) 올랐다.
신용보증기금과 산업은행도 동부의 유동성 지원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로 돌아서면서 그룹의 구조조정 및 재무개선 전망에 '청신호'가 켜졌다. 신용보증기금은 지난 11월21일 보증심의위원회를 열고 동부제철의 회사채 차환 발행 지원을 결정했다.
앞서 신용보증기금은 동부제철이 산업은행 등에서 빌린 대출금 8000억원의 만기를 연장하지 않으면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회사채 차환발행 지원을 위해 조달하는 자금이 대출상환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최근 김 회장이 초고강도 자구책을 제시하면서 신용보증기금이 태도를 바꿨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금융당국도 동부의 자구책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동부의 주요 계열사 매각 결정에 대해 “동부 등 현안 기업들의 자구계획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프로필
▲1944년 12월4일 강원도 동해 출생 ▲1969년 미륭건설 설립 대표이사 ▲1971년 동부고속 설립 대표이사 ▲1972년 동부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 ▲1973년 고려대 경제학 학사 ▲1982년 동부투자금융 회장 ▲1984년 동부제강 회장 ▲1986년 동부석유화학 회장 ▲1989년 동부생명보험 회장 ▲1997년 동부정보기술 회장 ▲2002년 동부전자 회장 ▲2005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현 동부그룹 회장
▲1944년 12월4일 강원도 동해 출생 ▲1969년 미륭건설 설립 대표이사 ▲1971년 동부고속 설립 대표이사 ▲1972년 동부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 ▲1973년 고려대 경제학 학사 ▲1982년 동부투자금융 회장 ▲1984년 동부제강 회장 ▲1986년 동부석유화학 회장 ▲1989년 동부생명보험 회장 ▲1997년 동부정보기술 회장 ▲2002년 동부전자 회장 ▲2005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현 동부그룹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