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던 이가 빠졌다'. 패션사업부분을 떼어낸 제일모직에 대한 업계 평가다. 패션사업은 제일모직의 모태사업이지만 실적에는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제일모직은 지난 2분기 패션부문의 적자 전환으로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1일 패션사업을 에버랜드에 양도하면서 실적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근에는 패션전문가인 이서현 부사장이 에버랜드로 옮겨가고 소재 전문가인 조남성 전 삼성전자 LED사업부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제일모직의 새로운 수장이 된 조남성 대표이사는 ‘전자소재 전문가’로 불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핵심인물이다.
이로써 제일모직이 삼성그룹의 소재사업 주축회사로 성장해 나갈 장기적인 청사진이 마련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승철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끌어온 사람을 대표이사로 앉혔다는 것은 제일모직의 경쟁력을 삼성전자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그룹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소재산업이 삼성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인 점만 두고 봐도 제일모직이 삼성전자계열의 주요 소재기업이 되리라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일모직이 2015년까지 장기 로드맵을 구축해 추진 중인 사업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태양전지 전극 페이스트, 수처리 멤브레인(2차 전지 분리막),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기판사업 등이다. 이번에 패션사업을 매각하고 받은 1조500억원 역시 전자재료와 화학부문의 투자재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투자 시나리오는 이렇다. 우선 OLED 부문에 20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일부는 지난 10월15일 제일모직이 삼성전자와 함께 인수를 완료한 독일 노발레드(Novaled) 인수대금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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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편광판 증설 4000억원, 2차 전지 분리막 600억원, 폴리카보네이트(PC) 증설 2000억원, 삼성전자소재연구단지 투자에 900억원가량이 쓰일 예정이다. 이들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5~15% 수준인 만큼 이번 투자가 향후 제일모직의 전반적인 수익성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조우형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제일모직이 투자를 확대하는 분야가 모두 삼성그룹의 신성장 동력과 연계돼 있는 만큼 향후 실적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일모직이 소재기업으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하면서 계열사 사업부 인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삼성코닝정밀소재의 '타겟'사업부다. 삼성코닝정밀소재의 LCD기판유리사업은 지난 11월 미국 코닝에 매각됐으나 타겟사업과 삼성코닝어드밴드글래스는 삼성계열사로 남았다. 이에 LCD나 OLED 등에 쓰이는 전극소재인 타겟과 연관 깊은 소재사업을 영위 중인 제일모직이 타겟사업을 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 것.
이승철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타겟사업부를 제일모직이 인수할 경우 유기화학(기존 전자소재)과 무기화학(금속 타겟)을 모두 영위하는 종합 소재회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제일모직의 사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감에 따라 사명변경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제일모직이라는 사명이 소재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해서다.
현재 제일모직의 사명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삼성케미칼'이다. 이미 해외사업장에서 '삼성케미칼'이라는 사명을 쓰고 있는 만큼 사명변경으로 인한 혼돈을 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제일모직의 영문명인 '제일인더스트리'도 후보로 거론되지만 사명에 '삼성'을 넣은 다른 계열사와 연관성이 떨어져 실제로 '제일인더스트리'로 변경될 가능성은 낮다.
일단 사명변경은 내년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명을 변경하려면 주주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내년 주주총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