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있는 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K씨의 넋두리다. 특히 올해는 자기계발에 힘쓰겠노라고, 구체적으로는 꾸준한 독서를 하겠노라고 부서원들 앞에서 다짐했건만 맘과는 달리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 한달에 두권쯤이야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지만 막상 연초에 하루이틀 어물쩍 넘기다 보니 이제 한권도 장담하지 못할 처지다.
K씨에게 이번 설은 다시 심기일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일 동안 이어지는 긴 연휴 중에 찬찬히 새해 결심을 되새겨보고, 의지를 다잡아볼 필요가 있다. 독서의욕을 고취시켜줄 수 있는 책과 함께라면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 듯 일순간에 '독서 모드'로 바뀔 수 있다. 물론 내용도 좋고 자신의 입맛에도 딱 맞는 책을 고르기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한 해 동안 출간되는 도서는 무려 약 4만 종(2012년,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 도서 기준)으로, 매일 100권이 넘는 도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책의 홍수' 속에서 좋은 책과 독자의 만남이 제대로 성사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교보문고 북모닝CEO에서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양서를 선별해 이번 설 연휴 동안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연말연시에 맞춰 쏟아져 나온 미래전망서 및 대대적인 마케팅을 앞세운 도서들에 밀려 독자의 손에 잘 잡히지 못한 도서 중에서 직장인들의 머리와 마음에 귀한 양식이 될 내용을 담은 책을 기준으로 삼았다. 풍성한 설을 만들어줄 실속 가득한 책 네 권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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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인문학> 조승연 지음 | 김영사ON 펴냄 | 1만5000원
"우리는 단어 하나로 인문학 한다!" 라는 띠지 카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른바 조승연표 인문학을 내세운 이 책의 키워드는 바로 언어다. '언어인문학'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을 말하려면 필히 그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어천재'로 불리는 그는 영어, 이탈리아어, 불어 등 전 세계의 7개 언어를 통달했다고 한다. 언어공부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전작도 《공부기술》 《그물망 공부법》 등 주로 공부에 관한 책이었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 '언어는 사람 공부'라고 한다. 언어에는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과 사상, 철학과 예술 등이 다 담겨있는 그릇이므로 하나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곧 또다른 거대한 인문학을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영어를 주소재로 삼아,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영어단어들의 유래를 통해, 재미있고 흥미로운 인문학 책을 내놓았다. 가령, 글래머는 '문법 잘하는 여자'이며 럭셔리는 '바람난 남자'라는 등 어렵게만 생각했던 언어학에 대한 편견을 시원스레 깨주는 쾌감과 함께 인문학적인 재미를 함께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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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MBA> 신인철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 1만8000원
흔히 '통섭' 콘셉트의 콘텐츠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웰메이드' 통섭 콘텐츠는 흔치 않다. 이 책은 부실한 통섭 콘텐츠가 단지 이종의 분야를 적당히 버무려놓은 데 그치는 것과는 달리 정반합이라는 통섭의 기본 원리를 충실히 구현해낸다.
그러한 융합이 펼쳐지는 장이 다름 아닌 미술관 및 박물관이라는 것이 색다르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의 전당에서 MBA커리큘럼을 진행하는 듯한 구성이 짜임새 있고 신선하다. 강의는 미술관을 세운 사람과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소장 작품들에 대한 일화까지 다루면서 기업들의 경영활동 및 경영술과 연관지어 다양한 인사이트를 창출해내고 있다.
일례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배우는 '전략적 의사결정', 루브르 박물관에서 배우는 '인적자원 관리' 등과 같은 식이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동시대 예술가들과 경쟁하며 독보적인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거장과 CEO, 또는 미술관과 기업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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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머니 비트코인> 김진화 지음 | 부키 펴냄 | 1만6000원
2009년 새로운 화폐가 탄생했다. 이름 하여 글로벌 디지털 가상 화폐,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와는 달리 중앙은행의 발행권 및 정부나 금융 기관의 관리감독으로부터 자유롭다. 국경의 제약이 없는 디지털 가상 화폐라는 속성상 기존의 어떤 거래수단보다 빠르고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장점은 곧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정부나 국제기구로부터 화폐로 공인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공인 여부가 비관적이고 불투명하다.
이 책은 비트코인의 특장점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독자를 위해 탄생배경에서부터 중간과정, 그리고 향후 전망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설명을 곁들여 상세히 서술해놓았으며 비트코인 입문 과정, 주요 거래소, 비트코인 주요 사용처 등 실용적인 정보도 빠짐없이 제공한다. 저자는 한국비트코인거래소 '코빗(Korbit.co.kr)'의 공동 설립자인 김진화 이사로, 비트코인에 관한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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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순례> 유홍준 지음 | 눌와 펴냄 | 1만8000원
초대형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이름을 알린 유홍준 교수가 쓴 서화입문서다. '답사기' 시리즈 이후에도 <유홍준의 국보순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등 끊임없이 보폭을 넓혀온 그가 이번에는 보다 더 대중을 위한 해설서를 내놓았다. 그가 선정한 명작 149점을 마치 순례하듯 소개한다. 명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해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제공한다.
유홍준 특유의 감칠 맛 나는 이야기 솜씨가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울러 미술사가들이 명작의 미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쓰는 분석 양식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명작을 보는 눈을 높이고, 감상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술 감상에 정답은 없음을 강조하며 비단 미술만이 아닌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도 자유와 관용, 이해와 배려의 태도를 가질 것을 설파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315·3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