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면서 한국영화에 각종 신기록을 세웠던 <명량>이 막을 내렸다. 개봉 7일 만에 손익분기점 600만 관객을 넘어섰고 개봉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해 국내 개봉영화로는 역대 12번째, 한국영화로는 10번째로 1000만명이 본 영화대열에 합류했다.

1000만명을 돌파하는 데 걸린 12일은 이전까지 최단기록이었던 <괴물>의 21일을 9일이나 앞당긴 것이다. <명량>은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68만명), 역대 최고 평일 스코어(98만명)도 기록했다. 10월1일 기준 누적관객 수가 전국적으로 1760만명에 달해 지금까지 국내 개봉영화 중 최고기록이었던 <아바타>의 1330만명과 한국영화 중 최고기록이었던 <도둑들>의 1298만명을 크게 넘어섰다.

매출액은 10월4일 기준 1356억6260만원을 달성해 역시 신기록을 수립했다. <명량> 관계자들은 세금 13%를 제한 뒤 약 1180억원짜리 돈 방석 위에 올라앉게 된 셈이다. 그 중 김한민 감독의 수익은 120억원에 달하고 최민식과 류승룡 등 주·조연의 인센티브는 총 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투자수익률도 최고기록일까. <명량>에 72억원가량 투자한 VC벤처펀드는 수익배분원칙에 따라 계산할 경우 대략 81억원을 가져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수익률이 113%다. 1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한 만큼 '대박'에 해당한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63편의 평균 투자수익률이 15.2%였던 점을 감안하면 우수하다.

그럼에도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로 얻은 수익률치고는 아쉬운 느낌이 든다. <7번방의 선물>(316%), <과속스캔들>(274%), <변호인>(196%), <수상한 그녀>(193%) 등과 비교해도 상당히 낮다. 총 제작비 10억원대로 345만 관객을 동원한 <부러진 화살>의 투자수익률은 무려 472%에 달했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 '이순신 영화' 집 팔아 제작했다 이혼까지

최근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다. (명량)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 인기로 해석해야 할 듯"이라는 글을 남겨 <명량>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과연 이순신 장군은 영화계에서 흥행의 아이콘이기만 할까. 지금까지 이순신 일대기를 다룬 장편극 영화가 세차례 만들어졌다. 그러나 흥행에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제작자에게 재정적인 타격을 안겨줬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유현목 감독이 1962년에 만든 <성웅 이순신>이 최초의 이순신 영화라 할 수 있다. 미니어처 촬영 규모가 당시 한국영화계로서는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흥행에서는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9년 후인 1971년, 똑같은 제목의 <성웅 이순신>이 이규웅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김진규, 김지미, 김지수 등 당대 톱스타가 출연했다. 제작비는 그 시절 한국영화 15편 제작비에 해당하는 1억5000만원으로 최고기록을 세웠고 동원한 엑스트라도 10만명에 달했다. 제작자이면서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김진규는 한남동의 1억원짜리 자택을 팔아 이 영화에 투자했다. 적지 않은 관객이 들어왔음에도 워낙 거금을 투자한 터라 수익이 나지 않았으며 이 일로 인해 김진규는 부인 김보애와 이혼하게 된다.

김진규는 충무공의 호국정신과 인간애를 흠모해 1977년에는 장일호 감독의 <난중일기>로 다시 도전했다. 아들 김진철, 김진과 함께 삼부자가 출연하는 기록을 남겼다. 해군본부까지 전격 후원한 <난중일기>에는 약 2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흥행에서는 또 다시 쓴맛을 보고 말았다.

다만 그해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으로 선정됐고 김진규는 두번째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보람을 얻었다. 이처럼 이순신은 <명량> 이전에는 흥행의 아이콘이기는커녕 거대한 제작비의 무덤이기도 했다.

최근 <명량>이 한국영화 역사상 흥행 신기록을 수립했지만 스크린을 독과점한 영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명량>을 상영한 스크린 수가 최대 1586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총 스크린 2584개의 60%를 <명량>이 가져가고 나머지 40%에 수십개의 영화가 배분된 것이다.

<명량>의 1586개 스크린 수는 관객 수가 역대 2위인 <아바타>(917개), 3위인 <도둑들>(1091개), 4위인 <7번방의 선물>(866개) 등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다.

<명량>이 지난해 흥행 1위였던 <7번방의 선물>에 비해 관객수는 37.4% 많은 반면 최대 스크린 수는 86.1%나 더 많았다. 결국 <명량>의 스크린당 관객수는 <7번방의 선물>, <아바타>, <도둑들>, <광해>, <변호인>, <아저씨>, <해운대>, <괴물>, <국가대표>, <왕의 남자>, <웰컴투 동막골>, <과속스캔들> 등에 비해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명량>은 독과점이 덜 했을 경우 나타났을 결과보다 과대평가됐을 개연성이 있다.


/사진제공=CJ E&M
/사진제공=CJ E&M

◆'내가 하면 로맨스?'… 스크린 독과점 다시 생각할 때

그렇다면 <명량>이 60%의 스크린을 독점할 정도로 다른 영화보다 재미있었을까. 포털 '네이버 영화'에서 네티즌이 매긴 <명량>의 평점은 8.55(참여 5만8451명, 10월3일 기준)로 현재 상영 중인 41개 영화 중 13위에 머물렀다.

'다음 영화'의 경우 7.8(참여 네티즌 6803명)로 더 낮다. <명량>을 본 관객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평을 읽어봐도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린다.

많은 관객이 선택하고 좌석점유율이 높은 영화에 많은 스크린을 배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정도가 과도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제공되는 메뉴의 다양성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인이 추천하거나 입소문을 탄 영화를 보고 싶은데 근처에 상영관이 없거나 상영되더라도 극장에 가기 곤란한 시간에만 상영된다면 그 영화는 선택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객이 많다는 이유로 스크린 수를 더 늘릴 때 이런 현상은 심화된다. 많은 사람이 관람했다는 사실만으로 군중심리나 호기심이 작용해 그 영화를 보러가는 사람이 늘 수 있어서다.

외국영화가 한국영화시장을 지나치게 잠식하는 것을 막고자 1967년부터 시행했던 스크린쿼터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스크린쿼테제는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일정기간 이상 상영하도록 한 제도다. 이후 스크린쿼터제가 축소되기 시작했을 때 영화인의 반대가 심했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으며 스크린쿼터제로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영화인들은 단식농성, 삭발, 촛불시위 등으로 스크린쿼터제를 사수하자고 호소했다. <명량>의 주연배우(최민식)는 정부로부터 받았던 훈장을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해 문화관광부에 반납(2006년 2월)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영화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재 상황에서 한국영화 중 소수영화가 독과점하는 현상에 대해 영화산업 관련자, 영화감독, 영화배급사들은 뭐라고 얘기할까. 인기가 많아 독과점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머니투데이 최부석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최부석 기자

◆ 시장 만능주의, 빼앗기는 선택권 인지해야

과거에는 할리우드의 대형 블록버스터와 대중성이 강한 영화에 밀리는 한국영화를 어느 정도 보호하며 발전시키기 위한 스크린쿼터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의 대형 블록버스터 및 대중성 강한 영화에 밀리는 작은 영화를 키워주는 수단이 미약하다.

현재의 한국영화 독과점현상은 시스템에서 생겨난 문제일 수 있다. 영화산업이 발전한 미국과 프랑스는 어떨까. 미국도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황금시대에는 8개의 메이저스튜디오 중 5개가 제작스튜디오, 배급사, 극장 체인을 함께 운영했다. 예컨대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라더스는 맨 시어터(Mann Theaters) 지분을 소유했고 소니는 로우스영화관 체인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8년 메이저스튜디오가 극장 상영에 대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하는 법안이 통과돼 제작스튜디오와 극장이 분리됐다.

현재는 영화를 만든 스튜디오가 배급사와 배급계약을 맺고, 배급사는 영화관 체인과 계약을 체결해 영화가 상영되는 시스템이 보편화됐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독과점금지법, 소위 '반 트러스트 법'을 통해 제작사가 극장 체인을 소유하고 자체 배급까지 하는 행위를 제한한다는 사실을 참고했으면 한다.

프랑스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아무리 관객이 많이 들고 매진을 기록하는 영화라 하더라도 1개관 이상 확장 상영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또한 극장 허가권과 영화 제작비 지원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프랑스 영화진흥기구(CNC)는 제작사와 협약을 맺어 특정영화가 상영관의 30% 이상 차지하지 않도록 조율한다.

한국영화 관객들은 시장 만능주의에 의해 빼앗기는 선택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영화선진국에서 다양성을 원칙으로 영화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영화산업 정책을 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