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실적을 달성한 한국항공우주. 하지만 주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신규수주 물량이 늘고 견조한 실적 증가세를 보이지만 대주주의 지분매각으로 물량부담이 발생해서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한국항공우주는 현대자동차, 한화테크윈, DIP홀딩스(두산) 등의 기업들이 지분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지난해 기존주주들의 주식공동매각약정이 종료되면서 이들 기업이 하나둘씩 발을 빼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쏟아지는 대량물량 때문에 주가의 단기하락을 막기 어렵겠지만 이때가 오히려 매수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수급이슈가 실제 한국항공우주의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항공기 생산 조립 라인. /사진=뉴스1 이종덕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항공기 생산 조립 라인. /사진=뉴스1 이종덕 기자

◆ 실적은 좋은데 수급에 ‘급락’
지난해 초 3만7000원대에서 시작한 한국항공우주 주가는 약 8개월 만에 10만원대까지 치솟으며 불을 뿜었다. 잇단 수주계약 성사가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외국인의 수급이 몰리며 주가상승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후 주가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법원이 한국항공우주의 국내 공공기관 입찰 참가자격에 제동을 걸어서다. 한국항공우주는 전년도 매출액의 13%에 해당하는 약 3070억원의 거래를 중단했다. 약화일로를 걷던 주가는 지난해 말 주요주주 중 하나인 한화테크윈의 보유지분 매각소식이 전해지며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다.

한화테크윈은 지난 1월 보유 중인 한국항공우주의 지분 5%가량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처분한 물량은 4%대로 알려졌다. 특히 한화테크윈이 한국항공우주의 인수 후보자로 물망에 올랐던 만큼 시장이 받은 충격은 컸다.

공시 다음날 주가가 10% 이상 떨어진 점이 이를 반증한다. 며칠 후 DIP홀딩스도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이어 지난 3월 현대자동차도 5%의 지분을 처분했다. 대주주들의 잇따른 지분매각 소식은 한국항공우주에 오버행(잠재적 대규모 매각 물량) 이슈를 일으키며 주가에 하락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주가 상황과는 정반대로 기관과 외국인의 자금은 급격하게 유입됐다. 지난 6일 기준으로 올 초부터 한국항공우주에 들어온 외국인의 누적 순매수는 4322억원에 달한다. 기관도 같은 기간 1283억원의 매수 우위를 기록했다. 특히 지분 블록딜이 있던 날 이들의 유입이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오버행 이슈를 오히려 매수 기회로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기관과 외국인의 꾸준한 ‘사자’ 행진은 한국항공우주의 안정적인 실적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항공우주는 연결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2조9010억원, 285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6%, 77% 증가했다고 공시했다. 회사창립 이래 최대실적이다.

한국항공우주는 훈련기 T-50의 이라크 수출과 경전투기 FA-50의 필리핀 수출 등으로 매출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보잉과 에어버스 핵심구조물의 증산으로 민수 매출도 늘었다. 내수용 FA-50과 수리온 2차 양산 등도 순조롭게 납품됐다.

특히 지난해 신규수주가 10조원으로 전년(2조4000억원) 대비 416%나 늘었다. 한국항공우주의 매출은 대부분 수주잔고에서 발생한다. 통상 수주산업은 사업진행 상황에 따라 기간별로 매출을 나눠 인식한다. 돌발변수로 비용이 나가지 않는다면 수주잔고의 증가가 매출 신장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신규수주는 군수부문에서 지난해 4분기 KFX 체계개발 수주에 성공해 연간 수주목표를 달성했다”며 “원화약세에 힘입어 영업이익률도 견조한 수준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 블록딜 나오면 ‘주워담아라’

한국항공우주의 올 1분기 실적 전망치 평균은 매출액 7866억원, 영업이익 787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자릿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T-50계열 이라크·필리핀 수출물량, 수리온 헬기, 각종 민항기 부품 등의 충분한 수주잔고에서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규수주물량 확보도 기대된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에 9조원 규모의 미공군 T-X사업(T-38 훈련기 350대 교체사업) 수주 관련 이슈가 부각될 것”이라며 “한국항공우주는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이뤄 입찰에 참가할 예정으로 T-X사업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말했다.

주가의 기초체력인 실적과 신규수주가 양호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요인은 수급이다. 현재 대량매물로 나올 수 있는 물량은 한화테크윈의 6% 지분과 현대자동차의 5% 잔여지분이다.

시장에서는 한화테크윈의 두산DST 인수가 예정된 만큼 자금확보 차원에서 지분매각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화그룹의 한국항공우주 인수 의지에 비춰볼 때 6% 전량 매각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 또 매각하더라도 실제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정동익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한화테크윈의 보유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현대자동차의 물량만 남는다”며 “이 경우 수급 우려가 크게 완화되면서 펀더멘털 요소들이 주가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 애널리스트는 “실제 매물의 출회나 이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하락하면 이를 매수기회로 활용하라”고 권했다. 한화테크윈의 보호예수기간은 지난 7일 만료됐고 현대자동차는 오는 6월17일부터 남은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

한편 지난달 이후 한국항공우주에 대한 보고서를 낸 5곳의 증권사 모두 투자의견으로 ‘매수’를 제시했다. 다만 5개사 중 3곳은 매각 대기물량으로 발생하는 투자심리 위축을 반영해 목표주가를 10%가량 내렸다. 이들의 평균 목표주가는 9만6600원이다. 지난 7일 종가인 6만5900원 대비 46.6%의 상승 여력이 존재하는 셈이다.


[STOCK] 한국항공우주, 탄탄한 실적에도 주가는 '불시착'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