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큰 화두였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국.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단순한 흥밋거리였지만 투자자의 관심은 ‘알파고를 헬스케어에 응용할 수 있느냐’에 집중됐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심화되며 로봇과 정보통신기술(ICT) 등이 헬스케어와 접목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수요가 늘어나는 의료서비스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이자 의료기술의 발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한정적이지만 외국의 경우 이들 기술의 결합이 실제 시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원격의료' 병원 안가도 돼

과학기술과 헬스케어의 접목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원격의료다. 의료서비스를 받기 힘든 환자들에게 과학기술을 활용한 첨단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진료서비스다. 영국 2차 의료기관인 에어데일 국민보건서비스 재단운용(Airedale NHS Foundation Trust)은 2006년부터 요크시 근교에 위치한 풀 서튼 교도소를 기점으로 원격진료서비스를 개시했고 매년 그 범위를 확대하는 중이다. 현재 영국 내 23개 교도소를 대상으로 21명의 전문의료진이 총 25개 분야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인지컴퓨팅의 미래(왓슨)'를 주제로 연설중인 롭 하이 IBM 기술개발책임자.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인지컴퓨팅의 미래(왓슨)'를 주제로 연설중인 롭 하이 IBM 기술개발책임자.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원격의료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킨다. 미국은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헬스스팟’(health spot)이라는 서비스가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중전화박스를 몇개 합쳐놓은 듯한 ‘헬스스팟 부스’에 들어가 의사와 영상통화로 마주한 상태에서 부스 내부에 비치된 체온계, 피부분석기, 검이경, 혈압계, 맥박산소측정기 및 청진기 등을 이용해 검진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신체 각 부위의 통증, 피부발진, 비뇨기 질환 등 15개가량의 1차 진료가 가능하다.
원격의료는 빈번하게 병원을 찾아야 하는 만성질환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준다. 원격의료시장 1위 기업인 보쉬 헬스케어의 ‘헬스 버디’는 혈압과 혈당, 체중, 산소포화도, 폐 기능 등 건강상태를 측정해 의료기관으로 전송하고 의사와 화상통화를 실시하는 서비스다. 미국 보훈청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도입됐으며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1000명 이상의 고위험군 환자에게 이 서비스가 제공됐다.

이미 원격의료가 대중화된 미국에선 헬스케어기술이 의약처방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당뇨관리기능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블루스타’는 처방약품프로그램국가위원회의 처방보험 심사를 통과해 약물 처방과 동일한 효과의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다. 처방받은 의약품과 동일한 보험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의사 손’ 대체하고 조언까지

상용화된 기술이 ‘의료보급’에 집중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더 주목받는 것은 ‘의료기술의 발전’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알파고와 비교되며 국내에도 알려진 미국 IBM의 인공지능 수퍼컴퓨터 ‘왓슨’이다. 이 컴퓨터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의료진들에게 실무적 조언을 제공하는데 60만건의 의학자료와 의료저널 42개 및 임상실험에서 나온 200만페이지 분량의 텍스트를 단 3초 만에 분석해 환자에게 가장 높은 성공 가능성을 보이는 패턴의 치료나 처방을 제시한다.

왓슨은 이미 현실에서 사용되며 수익도 창출해낸다.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뉴욕 메모리얼슬론 케터링 암센터와 협력 중이며 보험사 웰포인트는 의료진의 치료 계획안이 적절했는지를 왓슨에 물어보고 조언을 듣는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고차원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인간보다 더 정밀한 작업을 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로봇을 이용한 의료시술은 이미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의사의 뇌를 대신하지는 못하더라도 ‘손’이나 ‘눈’을 대신하는 역할은 충분히 상용화됐다는 얘기다.


다빈치로봇수술기기. /사진제공 =인튜이티브서지컬코리아
다빈치로봇수술기기. /사진제공 =인튜이티브서지컬코리아

가장 많이 보급된 의료 로봇은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다. 1998년 독일에서 심장동맥우회술을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급속도로 상용화됐다. 비싼 모델의 경우 30억원에 육박하지만 지난해까지 3500여대가 판매됐다. 의사가 집도하는 수술보다 수술비가 비싸지만 수술부위가 최소화돼 부작용이 적고 회복이 빠른 것이 장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형병원 몇곳에 도입돼 암수술 등에 활용된다.
증강현실을 이용해 의사의 수술을 돕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외신에 따르면 독일 함부르크 아스클레피오스병원의 칼 올드하퍼 교수는 간수술을 앞두고 아이패드에 환자의 CT 등을 3D로 구축해 입력한 뒤 3D영상과 실제 사진을 오버랩시키는 방법으로 증강현실을 수술에 활용한 바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수술 시 중요기관을 건드리는 실수를 줄이고 수술시간을 단축했다.


◆전신마비 환자도 팔 움직이게 만든다

헬스케어산업의 확장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전신마비 환자의 신체기능을 돌리는 데까지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최근 뇌와 근육 사이의 신호전달이 끊겨 전신이 마비된 한 환자가 손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개발됐다고 최근 밝혔다. 미국 파인스타인의학연구소 신경기술분석단은 환자의 대뇌피질 안쪽에 전극을 이식한 뒤 ‘뉴럴 바이패스’라는 이름의 장치를 통해 명령을 읽어냈다.

손목에는 전극패치를 붙여 뇌에서 발산하는 신호에 따라 손이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이 환자는 전자기타를 연주하고 물병에 담긴 물을 컵에 부어 막대로 젓는 정교한 동작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