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만능시대. 넘쳐나는 물건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최소한을 소유하는 삶’인 미니멀라이프가 주목받고 있다. 집 안에 빼곡히 들어선 물건을 처분하고 텅 빈 공간에서 여유를 찾는 미니멀리스트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니멀라이프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예술분야에서 주목받던 철학 미니멀리즘에서 발전했다. ‘최소한’이라는 뜻과 ‘주의’가 결합된 미니멀리즘은 현대인이 삶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춰 소박하게 살아가는 미니멀라이프로 확대됐다.
올초 주요 대형서점에선 미니멀라이프, 정리의 기술과 관련된 도서의 판매량이 1년 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저장강박증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물건 버리기·비우기 운동에 나섰고 넘쳐나는 정보와 문어발식 인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니멀라이프의 목표는 버리는 생활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는 것이다. 단, 아무것도 갖지 않는 무소유와는 의미가 다르다. 최소한의 물건을 쓰면서 최대한의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 정리의 대상은 물건에 국한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늘어난 인맥과 정보도 해당된다. 이를 통해 시간과 감정, 돈의 낭비를 막을 수 있어서다.
미니멀리스트는 주변을 정리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일의 효율성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건을 사기 위해 미디어와 광고에 현혹되는 시간, 쇼핑하는 시간 등을 줄이면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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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저성장시대의 생존법
우리나라에 상륙한 미니멀라이프는 크게 두가지 요인에서 시작됐다. 먼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철저히 개인주의로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통적인 가족구조는 대부분 핵가족으로 바뀌었고 개인주의 가치관이 팽배해졌다.
세계가 인정하는 CEO들도 구태의연한 허례허식보다 개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리더의 모습으로 각광받는다. 티셔츠와 운동화, 청바지로 상징되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했고 옷장에 똑같은 디자인의 회색 티셔츠를 걸어놓고 사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삶도 심플하다.
반대로 물건을 쌓아두는 저장강박증은 통상적으로 저소득층과 후진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언제 사용할지 모르는 물건에 집착하고 저장하는 생활습관이 특징이다.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과소비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는 현상도 후진국에서 나타난다.
또 다른 미니멀라이프의 증가요인은 우리나라 경제활동의 중심인 40대(1968~1974년생)에서 찾을 수 있다. 제2차 베이비붐세대로 불리는 40대는 저성장 국면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한다.
40대들은 50~60대인 제1차 베이비부머와 비교하면 성공과 성취의 기회가 상당히 적다. 1차 베이비부머는 1970~1980년대 고도의 성장기를 거치며 부동산과 금융으로 경제력을 축적한 반면 40대는 불안정한 직장생활과 자녀의 교육비 부담에 시달리며 소비를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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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 옷장. /사진=페이스북 캡처 |
통계청의 ‘2014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40대가 안고 있는 금융부채는 5036만원으로 50대(5222만원) 다음으로 많다. 또 교육비 등 소비지출도 2910만원으로 높은 편이다. 빚이 많은데 돈 들어갈 곳이 더 많다는 얘기다.
자산보다 갚아야 할 부채가 많은 한계가구도 40대가 최고다. 40대 한계가구는 2012년 11.0%(37만2000가구)에서 2015년 15.3%(51만8000가구)로 4.3%포인트(14만6000가구) 증가했다. 60대 이상 가구주인 한계가구가 16.8%(28만3000가구)에서 17.5%(33만9000가구)로 늘어난 것보다 가파른 속도다.
물론 자의적으로 소유욕을 버린 40대도 늘었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를 겪은 부모세대가 물건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보이자 오히려 거부감이 생긴 것. 노후준비에 대한 교훈도 40대가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것을 소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40대부터 생애전반에 걸쳐 점진적으로 부채를 감축하고 노후생활을 준비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들의 소비욕구는 점차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재앙에 사라진 사물, 일본은 ‘단사리’
일본은 이미 미니멀라이프 열풍이 뜨겁다. 일본의 베이비붐세대에 ‘단사리’ 운동이 유행하고 있다. 끊을 ‘단’, 버릴 ‘사’, 떠날 ‘리’로 물건에 대한 집착을 끊고 버림을 의미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대지진을 겪은 후 소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많은 소유물이 재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일상이 흔들리는 재난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책에서 “일본인은 대규모 자연재앙을 겪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사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여 자신에게 집중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물건을 과감히 버리는 대신 삶의 자유를 찾았다. 물건보다 경험에서 얻는 행복의 시간이 더 길다”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삶에선 누가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있는지 겨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999년 미국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는 욕구불만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 주인공에게 “우리는 쓸모없는 것들을 산다. 결국 네가 가진 물건에 소유당하고 말 거야”라고 경고한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이 영화를 통해 버리는 삶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든 것을 잃어야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