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품을 떠나 채권단 관리회사로 새 항해를 시작한 현대상선. 채권단은 첫 운항의 키를 유창근 사장에게 맡겼다.

유 사장이 현대상선의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앞서 현대상선은 2012년 회사가 2년 연속 적자의 수렁에 빠지자 자회사 해영선박 대표를 지낸 유 사장을 불러들였다.


/사진제공=현대상선
/사진제공=현대상선

◆ 실력발휘 기회조차 없었던 첫 등판
첫 등판 당시 구원투수로서 그의 역할엔 한계가 있었다. 경영자의 능력만으로는 거세게 밀려오는 ‘불황’의 해일을 막기 역부족이었던 것.


현대상선은 2011년부터 적자수렁에 빠졌다. 2010년 6017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이 1년 만에 3373억원의 영업손실로 뒤집혔다. 2012년에는 5198억원으로 손실이 더 늘었고 순손실이 1조원에 육박했다.

물동량은 떨어지고 컨테이너선 공급과잉으로 운임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영업해 매출을 늘려도 비용부담만 늘어날 뿐이었다. 또 이란 제재로 유가 급등이 겹쳐 영업 확대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유 사장은 2013년 취임해 불황 맞춤 경영으로 ‘영업손실 줄이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2013년 2분기엔 10분기 만에 당기순이익에서 반짝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자회사를 완전히 되돌려 놓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유 사장은 2014년 3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명목상 부회장 승진이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실적부진을 책임지고 전임자였던 이석희 사장과 같은 길을 간 것으로 여겼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해운업계에 드리운 최악의 불황 앞에서 유 사장은 ‘실력발휘’ 할 기회조차 없었다”며 “유 사장이 이례적으로 이번에 다시 ‘구원투수’의 역할을 맡은 것은 채권단 또한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으로 구성된 현대상선 경영진추천위원회(경추위)는 당초 해외전문가까지 범위를 넓혀 사장후보를 물색하겠다고 밝혔지만, 최종 후보로 떠오른 3명은 모두 전직 현대상선 임원이었다. 해외 선사 임원이나 외국인 CEO 등은 보수 수준을 충족시키기 어렵고 채권단과의 커뮤케이션에도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유 사장은 해운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컨테이너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라며 “현대상선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및 경영정상화 추진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현대상선 본사.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현대상선 본사.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 두번째 등판, 이번엔?
지난 2일 현대상선 경추위로부터 새 사장 후보자로 결정된 유 사장의 의욕은 남달라 보인다. 취임 이전부터 실질적인 업무를 시작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인천항만공사(IPA) 사장직에서 지난 7일 퇴임한 유 사장은 퇴임식 직후부터 현대상선 사장내정자 신분으로 업무보고를 받으며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로 현대상선이 대체선박 투입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경영공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두번째로 등판한 현대상선의 상황은 첫 등판 당시와는 다소 다르다. 유 사장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해운업 불황은 여전하지만 한진해운이 정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법정관리 기업으로 향하며 현대상선은 졸지에 최대 국적 선주사로 거듭날 전망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장기적으로 국내 해운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 현대상선에 물동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900%에 달했던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지난달 초 채권단의 7000억원 출자전환 등으로 200% 밑으로 개선됐고 정부가 만든 12억달러(1조4000억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이용해 초대형·고효율 선박으로 운항 구조를 바꿀 수 있다.

현대상선은 또 글로벌 최대해운동맹인 2M과의 공동운항을 통한 원가절감과 경쟁력 향상을 기대한다. 현대상선 측은 “2M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10월 말쯤 세부적인 내용까지 협의를 마치고 내년 4월부터 공동운항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현대상선 행은 ‘배수의 진’

IPA 사장직을 포기하고 현대상선 행을 택한 유 사장은 “국내 해운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어쩔 수 없이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직을 내려놓는다”고 IPA 사장 퇴임의 변을 밝혔다.

유 사장 개인에게 이 선택은 도박일 수 있다. 그가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나 IPA 사장직은 3개월 동안 공석이 된다. 지금껏 추진한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른 비난여론도 상당하다. 특히 인천시는 최근 홍순만 전 경제부시장이 8개월 만에 사퇴하고 코레일 사장으로 떠나 책임감 없는 인사라는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만약 유 사장이 현대상선에서 성공적인 경영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번 선택이 평생 유 사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 사장이 IPA에서 사상 최대의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많은 일을 벌여놓고 무책임하게 떠났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