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공예는 한지(韓紙)를 활용한 예술이다.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한지는 과거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데 주로 쓰였다. 또 문, 함, 그릇 등에 붙이는 방식으로 일상생활에도 유용하게 사용됐다. 조선시대 양지(洋紙)가 들어오면서 활용도가 크게 줄었지만 한지공예는 전통을 가진 예술로 살아남았다. 최근 들어 친환경소재에 주목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한지의 활용성이 넓어질 조짐을 보인다. 한지공예의 활성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 심화숙(64) 전통한지공예가협회장을 만나 한지공예의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심화숙 전통한지공예가협회장. /사진=임한별기자
심화숙 전통한지공예가협회장. /사진=임한별기자

◆선조들의 멋스러움 간직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현대공예를 배웠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지에 그리는 민화를 접하게 됐어요. 그림도 좋아했기 때문이죠. 자연스레 한지를 접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한지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궁금해졌어요.”

심 회장이 한지공예와 함께한 30여년의 세월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지공예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과 멋스러운 한지공예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다 보니 실력은 쑥쑥 늘었다. 다양한 대회에 출품해 상을 휩쓸었고 국내외에서 전시회도 숱하게 열었다.


20여년간 전통한지공예가로서 창작활동에만 매진해온 심 회장은 개인적 성공을 거둔 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2001년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한지공예를 되살리기 위해 전통한지공예가협회를 만들었다. 현대와 동떨어져 외면받는 전통한지공예를 계승·발전시키고 한지공예문화 저변 확대를 위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수십년간 전통한지공예가로 활동하며 어느 순간 현재의 무형문화재 계승이 폐쇄적으로 이뤄지면서 현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전통한지공예 활성화를 위해선 옛것을 그대로 잇는 사람과 현대 트렌드를 접목해 상품화가 가능한 한지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이에 따라 전통한지공예가협회는 한지공예의 계승·발전을 통한 세계화, 전통화, 교육화, 산업화를 목표로 운영 중이다. 지난 15년간 ▲전통한지공예문화관광상품 개발 및 보급 ▲전통한지공예 국제공모전 개최 ▲전통한지공예가 회원전 개최 ▲직업능력개발훈련 ▲한지공예 민간자격 신설·관리 등의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특히 한지공예 민간자격 신설·관리는 심 회장의 애착이 큰 분야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제과·제빵기술 자격증을 따면 세계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것처럼 한지공예기술 자격증은 한국에서 따면 최고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일정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에 심 회장은 전통의 멋을 간직한 서울 북촌 한복판에 염색, 매듭, 탈, 목공예, 단청, 한지 등 전통한지공예를 가르치는 한지공예아카데미를 열었다.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한국문화의집에도 교육 기능이 있지만 민간 차원에서도 수준급 교육시설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심화숙 전통한지공예가협회장. /사진=임한별기자
심화숙 전통한지공예가협회장. /사진=임한별기자

◆국가대표 명품브랜드 가능성 충분

전통한지공예 교육과 함께 심 회장은 현대에도 통할 만한 한지공예품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물이 새로운 신소재 한지로 만든 ‘실’이다. 한지실은 아기 옷, 이불, 양말 등 다양한 공산품 제조에 활용될 수 있다. 한지의 강력한 소취(악취 제거) 기능이 매력포인트다. 

최근에는 기업도 한지에 주목하고 있다. 친환경소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현대자동차는 몇년 전 한지 스피커, 한지 시트 등을 만들어 자동차 내부에 접목시켜 호평을 얻었다. 효성은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한지 인테리어, 한지 장판 등을 개발해 보급 중이다.

한지의 우수성을 인지한 주요 대기업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기 시작하며 한지를 산업에 접목시키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심 회장은 오는 14~16일 서울시 주최로 광화문에서 열리는 제3회 한지문화제 감독을 맡아 한지공예 체험, 한지패션쇼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기회가 된다면 한지공예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열어 궁극적으로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의 명품브랜드를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한지가 우수한 품질, 고풍스런 멋, 스토리 등을 갖춘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심 회장의 판단이다.  

“전통한지공예도 글로벌 시대에 맞게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적 냄새가 나면서도 현대적 색깔도 입히는 거죠. 한지는 품질이 우수하고 한국만의 전통적인 멋도 있어요. 수많은 고난을 강한 의지와 인내심 그리고 부드러운 자세로 극복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스토리를 함축하고 있어 세계적 브랜드의 명품이 될 수 있어요. 정부가 관심을 갖고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준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도 가능한 일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