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6.25 전사자 묘역 위에 앉은 까치 한마리. /자료사진=뉴스1 오대일 기자
6.25전쟁.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6.25 전사자 묘역 위에 앉은 까치 한마리. /자료사진=뉴스1 오대일 기자
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67년째 되는 날이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은 이제 극소수에 불과하다.
6·25전쟁을 정확히 기억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전달해줄 수 있는 것은 기록과 명칭이다. 그만큼 언어와 단어가 가지는 가치가 앞으로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6·25의 정식명칭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방부가 공식지정하고 있는 6·25의 명칭은 '6·25전쟁'이다.


6·25전쟁을 지칭하는 용어는 5차 교육과정까지 '6·25동란'→'6·25사변'→'6·25남침'→'6·25전쟁' 등 총 3차례 바뀌었다.

동란이나 사변은 사실상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녹아 있는 표현이기도 했다. 지금도 과거 이 용어가 익숙한 세대들은 6·25전쟁 대신 6.25동란이나 사변을 사용한다.

또 6·25전쟁이라는 용어는 '한국전쟁'으로도 혼용되는데 이를 두고 사람마다 입장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전쟁이라는 용어가 한국이 일으킨 전쟁이나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 등 전쟁에 내포된 의미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방부에서도 1970년 6·25에 대한 전쟁사를 발간하면서 '한국전쟁사'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후 한국전쟁이라는 용어에 내포된 의미가 정치·이념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0년 '6·25전쟁사'로 이름을 수정해 발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