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이든 주말이든 큰 차이가 없어요. 관광버스 여러대가 와서 중국 손님들을 우르르 내려놓고 갑니다. 자유여행객들도 많고요. 동대문 고객 80%가 중국인이라고 보시면 돼요.”

특별할 것 없는 평일 오후. 쇼핑센터가 밀집한 동대문 일대는 중국인관광객(유커)들로 북적댔다. 이곳 쇼핑몰 상가 특유의 좁은 통로는 유커들이 몰려들면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했다. 오히려 내국인들이 마음 편히 쇼핑을 즐기기 어려운 환경. 일대 식당도 덩달아 북적댔다. 매장 곳곳에는 유커를 위한 중국어 간판과 중국인 통역요원이 배치돼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불과 3년 전. 패션 메카 동대문의 풍경이다. 지금은 어떨까. 동대문은 2015년 메르스사태로 1차 위기를 겪은 후 지난해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따른 후폭풍으로 또 한번 고비를 맞았다. 흔들리는 동대문시장을 다시 찾았다.


현대시티 아울렛. /사진=김설아 기자
현대시티 아울렛. /사진=김설아 기자
두타면세점. /사진=김설아 기자
두타면세점. /사진=김설아 기자

◆ 발길 끊긴 유커… 속 타는 상인들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주변은 눈에 띄게 한산했다.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던 사거리 도로는 텅 비었고 일대를 점령했던 관광버스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한국 관광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동대문 쇼핑을 즐기던 유커들이 발길을 뚝 끊은 탓이다.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는 한 상인은 “많을 때는 30대도 넘는 관광버스가 일렬로 쫙 들어서 있던 도로”라며 “경찰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주차 단속을 나올 정도로 통제가 안됐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다. 메르스 이후로 관광객이 줄어들더니 지난해부터는 중국인을 거의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동대문을 대표하던 소매쇼핑몰도 초입부터 한산했다. 오후 4~5시면 한창 관광객들로 붐빌 시간. 쇼핑객은 채 10명이 되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 쇼핑을 나온 중·고등학교 여학생들과 아기와 함께 구경을 나온 몇몇 주부들이 전부였다. 양 옆으로 뻗은 부스형 매장엔 구경꾼 하나 없었다. 너도나도 ‘SALE’이라는 문구를 달고 영업 중이지만 구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힘들어 죽겠어요. 이번 여름 장사도 다 망쳤죠. 매출이 반토막도 아니고 5분의1 정도로 줄어들었어요. 보세요. 지금 거의 폐장 분위기잖아요. 옛날 같으면 새벽 4시쯤, 딱 그때 분위기예요.”

15년 동안 이곳에서 여성복을 판매해 온 상인 김모씨는 매출 80%를 차지하던 유커들이 끊기면서 매달 월세를 내기도 버거운 상황에 처했다. 장사가 잘 되던 때에는 하루에 옷 수백장을 팔던 점포가 이제는 20~30장도 겨우 팔 정도. 그나마도 못 파는 날이 있다는 게 김씨의 전언이다.

김씨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 닥친 상인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폐장하는 매장도 늘었다. 목이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히던 입구쪽 매장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몇몇 상인들도 장사를 접을지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휴가는 꿈도 못꾸죠. 예전엔 휴가철만 되면 장사가 잘 되니까 바빠서 못갔는데 이젠 너무 적자라 못가고 있어요. 월세는 몇달째 밀렸는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마이너스만 찍으니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어요.”

또 다른 상가 상인들도 울상이긴 마찬가지. 모 패션상가에서 옷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던 이모씨는 최근 의류 제작 주문을 중단했다. 장사가 안되다 보니 평소 낱개로 팔지 않던 신상품도 샘플용으로 한개를 선뜻 내어준다. 

한 가게 직원은 “이런 사례가 장기화되면 공급체인이 약화된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힘드니 하나라도 사겠다고 하면 파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길 건너 종합쇼핑몰 매장들도 적적했다. 손님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상인들끼리 대화하는 소리와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는 모습만 눈에 띄었다. 이곳으로 자주 아이쇼핑을 나온다는 주부 최모씨는 “유커가 많을 때는 이곳을 돌아다닌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내국인들이 쇼핑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고 느끼면서도 상인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내부. /사진=김설아 기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내부. /사진=김설아 기자

◆ 폐업하고 임대 물량 쏟아져… 주변 상권도 침체
한숨이 늘어가는 건 비단 쇼핑몰만이 아니다. 폐업하는 식당이 속출하는 등 주변 상권도 함께 침체일로다. 유커들이 줄어 음식 장사가 안 될뿐더러 상인들이 매출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등 가장 먼저 밥값을 아껴서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한국음식을 맛보려는 중국인들도 큰 고객이었지만 음식배달을 시키는 상인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이들이 당장 하루에 쥐는 돈이 몇만원 밖에 되지 않으니 7000~8000원에 달하는 식사를 가장 먼저 끊더라”며 “덩달아 우리도 어려워져 종업원도 한명만 남기고 내보내고 매출이 떨어져 근심이 크다”고 밝혔다.

동대문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일대 오피스텔과 게스트하우스도 어렵긴 마찬가지. 당시 건물 전체를 통째로 임대해 게스트하우스형 도시민박을 운영하던 숙박업자들은 유커 부재로 인한 막대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지고 있다. 없어서 못내주던 게스트하우스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하루에도 재임대를 놓거나 철수하겠다는 전화가 몇통씩 온다”며 “임대물량은 한번에 7~10호씩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현재 일대 부동산마다 10~20개에 달하는 임대물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대문 일대는 이렇듯 한여름에도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다. 유커들은 지난해에 비해 60% 이상 급감한 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 길어지는 사드 여파에 동대문 상권 전체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0호(2017년 8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