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엽, 집단 간 갈등에 대한 실험얘기다. 사회심리학자 무자파르 셰리프는 이전에 서로 만난 적 없는 동갑내기 소년 22명을 모집해 오클라호마의 드넓은 캠핑장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먼저 아무런 기준 없이 같은 수의 두 팀으로 소년들을 나눴다. 실험의 초기 단계. 소년들은 다른 팀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소속감을 키웠다. 소년들은 팀 이름을 각각 독수리팀과 방울뱀팀으로 정했고 깃발과 옷에 상징 문양을 넣었다. 이 과정에서 집단 내 위계질서가 형성됐고 각 팀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소년이 등장했다.
실험의 중간 단계. 각 팀에게 상대팀의 존재를 알려 경쟁심을 갖도록 했다. 트로피와 메달, 그리고 소년들이 좋아할 캠핑 나이프를 부상으로 걸고 나흘 동안 다양한 시합을 벌이도록 유도했다. 초반에는 상대팀을 말로 조롱하는 정도였으나 두 팀 사이의 갈등은 점차 심해졌다. 독수리팀은 방울뱀팀의 깃발을 불태웠고 방울뱀팀은 그 반격으로 독수리팀의 거주지를 습격해 물건을 훔치거나 침대를 뒤집어 놓았다. 두 팀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했고 결국 연구자들이 둘을 힘으로 떼어내야 했다.
이 실험에서 소년들은 자신의 소속팀이 상대팀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한 특성을 가졌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상대팀이 열등하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을 발견했다. 사실 두 팀의 소년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갈등을 겪으면서 이런 선입견이 생겼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실험의 마지막 단계. 연구자들은 두 집단이 더 자주 만나도록 했다. 그 결과 조우가 빈번해지더라도 일단 생성된 공격적 성향과 선입견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협력해야 성과가 나는 공통의 목표(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를 주고 함께 수행할 경우 놀랍게도 갈등과 선입견이 확연하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협력의 경험이 갈등해소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셰리프의 실험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 갈등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준다. 태어난 곳, 피부색, 종교, 성적 취향, 장애 등 서로를 구분하는 표지가 무엇이든, 함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집단에 잘못된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을 줄이는 방안도 이야기한다. 자주 만나 뭐라도 함께 해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진행된 실험은 여기까지다. 자, 이제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자. 독수리팀과 방울뱀팀 대신 남북한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난 평창올림픽에서 남북한 단일팀을 보고 싶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9호(2017년 10월11~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청계광장] 독수리팀과 방울뱀팀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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