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사진제공=두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사진제공=두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주요 미래 먹거리로 지목한 연료전지시장에서 진출 3년 만에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예상수주액은 약 1조원으로 2015~2016년 2년간 누적수주액(약 9900억원)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선 연료전지부문 연매출이 전년대비 2배가량 늘어나고 영업이익도 흑자전환하며 성장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를 기점으로 연료전지사업이 두산의 새로운 주력사업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M&A 승부수, 성과 가시화

두산그룹은 박 회장이 지주사격인 ㈜두산 회장 재임(2012.5~2016.3) 시절인 2013년 9월 국내 주택용 연료전지업체 퓨얼셀파워를 흡수합병하고 이듬해 7월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미국 클리어엣지파워를 인수하며 연료전지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연료전지는 연소과정을 거치는 일반적 발전기와 달리 수소와 산소를 전기화학적으로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한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사용해 발전단가가 높지만 발전효율이 좋고 부산물로 물과 열만 발생시켜 소음 및 유해가스 배출이 적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 최근 각광받는다.

현재 국내 발전용 연료전지시장은 포스코에너지와 두산이 양분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양사의 연료전지 설비용량은 각각 180MW(78%)와 50MW(22%)다. 2006년 연료전지시장에 진출한 포스코에너지가 선도업체라는 이점을 앞세워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했지만 최근 이 시장의 무게추가 두산으로 급격히 기우는 모양새다.

포스코에너지는 2014~2016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누적손실 규모가 2200억원을 넘어섰다. 손실이 커지자 2015년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연료전지 공급 수주를 한건도 하지 못해 최근에는 매각설까지 돌고 있다.


반면 두산은 박 회장이 주도한 인수합병(M&A)으로 단숨에 연료전지 관련기술을 확보했고 지난 5월 익산 연료전지 생산공장을 준공하며 연료전지시장 진출 3년 만에 생산·판매·시공까지 수직계열화체계를 완성해 공격적 경영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올해 연료전지 수주량은 지난해 대비(37.8MW) 3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상반기 12MW 신규수주를 따낸 데 이어 4분기에 한화에너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으로부터 총 90MW가 넘는 일감을 확보할 예정이어서 예상수주액은 약 1조원이다. 

이는 연료전지사업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오진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두산 연료전지사업은 매출액 1871억원, 영업손실 100억원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대규모 수주를 통해 연매출 2939억원, 영업이익 17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증권업계는 두산의 전체 매출에서 연료전지사업의 비중이 지난해 10% 미만이었는데 내년에는 20%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박 회장의 승부수가 먹히며 두산이 새로운 성장엔진을 장착한 셈이다.  

특히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신재생에너지정책 강화가 두산 연료전지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현재 4%대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다만 정부의 새로운 에너지정책은 두산그룹 입장에선 양날의 검이다. 주력사 중 한곳인 두산중공업이 국내 원자력발전설비시장을 독점하며 원전설비사업을 주요 성장동력으로 삼아와서다. 

최근 공론화 과정을 위해 원전 건설이 중단된 신고리 5·6호기 주설비공사를 두산중공업이 맡았는데 업계에선 매출 손실이 1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신규원전 발주가 없어지면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박 회장이 연료전지사업과 함께 공을 들인 면세점사업이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국내업체간 과열경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점도 극복할 과제다. 두타면세점은 지난해 목표 매출(5000억원)의 5분의1 수준인 1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중국인관광객이 대폭 줄어든 올해는 실적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에 예상되는 손실을 두산 연료전지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대체하는지 여부와 면세점사업 안정화가 그룹 성장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준비된 현장형 경영자

박 회장은 대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벌BU)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오비맥주 상무, 두산 부사장·사장, 두산산업개발·두산건설·두산 부회장, 두산건설·두산 회장을 거쳐 입사 31년 만인 지난해 3월 두산그룹 총수의 자리에 올랐다.

두산의 바닥부터 시작해 수십년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박 회장은 준비된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 안팎에선 외부 노출이 많지 않은 탓에 은둔형 경영자라는 별명도 있지만 주요 사업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직접 점검하는 현장형 경영자기도 하다.

일례로 박 회장은 올 하반기 첫 경영일정으로 체코 플젠과 도브리스에 있는 두산스코다파워(두산중공업 자회사), 두산밥캣 EMEA(유럽·중동·아프리카)법인을 방문해 현지상황과 신제품 등을 직접 살폈다.

국내 재벌 오너 3·4세 중 손꼽히는 우수한 경영능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도 있다. 2015년 KBS 탐사보도팀이 대학교수, 증권사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공공·민간연구소 전문가 50여명에게 의뢰해 30대그룹 재벌 3·4세의 경영능력을 평가한 결과 박 회장은 승계 정당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회사 발전 전망부문에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 이어 4위로 평가됐다.

☞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보스턴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동양맥주 이사 ▲오비맥주 상무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 ▲두산 대표이사 사장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두산 부회장 ▲두산건설 회장 ▲두산 베어스 구단주 ▲두산 회장 ▲두산그룹 회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510호(2017년 10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