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버스에서 먼저 내린 뒤 미처 내리지 못한 아이 엄마가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버스기사가 이를 무시했다는 글이 한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왔다. 버스기사를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했고 일부 시민은 해당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 기사를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버스기사는 네티즌이 올린 글 하나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됐다. 

지난 9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240번 시내버스 사건’은 대표적인 사이버 명예훼손 피해사례다. 당시 사고 조사결과 기사의 잘못으로 매도하기 어려운 사안임이 밝혀졌고 처음 글을 쓴 네티즌도 “제대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오해했다”며 사과문을 올려 일단락됐다. 버스기사는 사건 이후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를 보상할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전무하다.

'사이버 명예훼손' 보험 적용, 왜 힘드나

◆명예훼손 늘지만 보험은 ‘부실’

개인정보 또는 잘못된 정보가 사이버상에서 확산돼 명예훼손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잦아지며 관련 보험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2015년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신고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는 총 1만5043건으로 전년(8880건) 대비 무려 69.4%나 증가했다. 2013년(6320건)과 비교하면 238% 늘어났다. 

이처럼 사이버 명예훼손 피해자가 늘어남에도 이들은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최근 학계에서는 사이버상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1월19일 ‘보험을 이용한 개인의 사이버 리스크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개인의 사이버 피해를 종합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상품개발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고 11월20일 국회에서는 ‘사이버·침해사고 구제 현실화를 위한 제1차 사이버보험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인터넷 이용률이 높아지고 240번 버스기사처럼 억울한 사례가 증가하며 사이버보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형법상 일반 명예훼손의 경우 2년 이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하지만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7년 이하의 징역으로 일반 명예훼손보다 벌이 무겁다. 이는 온라인상 명예훼손 행위가 인터넷의 신속성과 전파성 등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줘서다.

현재 국내에는 사이버 명예훼손을 보상하는 단독 보험상품은 없고 일부 손해보험사가 장기손해보험에 부가해서 판매하는 ‘사이버 명예훼손 특약’이 있다. 이 특약은 사이버상에서 발생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처분할 경우 피해자에게 정액보험금이 지급되는 구조이며 특약보험료는 연 100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 특약상품을 알고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또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확실해야 하고 검찰의 기소처분 결정이 수반돼야 한다. 

240번 버스기사의 경우 게시글을 올린 사람을 명예훼손 가해자로 판단할 수 있지만 일부 피해자는 온라인의 무기명 특성으로 인해 가해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보험금도 50만~100만원으로 소액이어서 본인이 받은 피해 대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상품으로 한화손해보험이 특약형태로 판매 중인 ‘마이라이프 세이프투게더 보장보험’을 들 수 있다. 이 상품은 올 초 출시돼 1월 말부터 7월 말까지 6개월간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할 정도로 독창성을 인정받은 상품이다.

하지만 수요가 많지 않다. 한화손보 관계자는 “애초에 이 상품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이라며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에 초점을 맞춘 상품은 아니다. 판매량도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보험 적용, 왜 힘드나

◆물질·정신적 피해, 산정 ‘모호’

이처럼 사이버 명예훼손 보험은 수요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정확한 피해규모 산정도 어려워 보험사들이 출시를 꺼린다. 

사이버 명예훼손 보험상품 개발의 핵심은 피해규모를 어떻게 산정하느냐다. 명예훼손의 경우 대부분 상대방을 향한 비방과 모욕 등이 주를 이뤄 정신적인 피해가 크다. 물론 명예훼손으로 인해 피해자가 다니는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물질적인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예훼손으로 충격을 받아 길에서 넘어져 다쳤다고 주장하는 등 그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와 관련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규모는 명예훼손의 원인이 된 사실을 ▲사이버상에서 포스팅된 횟수 ▲언론에 보도된 횟수 ▲사회적인 영향력 등으로 수치화해 객관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신적 피해를 당한 부분은 산정이 쉽지 않아 이 부분은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사이버 명예훼손은 새로운 리스크 형태로 아직 적정 요율 산출을 위한 경험통계가 충분히 집적되지 않아 상품개발이 쉽지 않다”며 “설사 출시된다 해도 보험금 수취를 목적으로 가해자를 무분별하게 고소하는 등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6호(2017년 11월29일~12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