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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을 기존 상품 그대로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는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가 오는 10월 시행된다. 증권사들은 제도 도입을 앞두고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앞세워 400조원에 이르는 퇴직연금 '머니무브'를 유도할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에 따라 앞으로는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이전할 때 기존 포트폴리오 그대로 옮길 수 있다.
가입자는 DC(확정기여형), IRP(개인형퇴직연금) 등 계좌 내 펀드 등과 같은 금융상품을 해지해 현금화하지 않고도 사업자인 금융사만 바꿀 수 있다. 사업자만 변경하고 ▲예금 ▲수익증권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 등은 그대로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가입자들이 퇴직연금을 다른 금융사 계좌로 옮기면 운용 중인 투자 상품을 모두 매도하고 현금화하거나 만기일까지 기다렸다가 이전해야 했다. 과정이 번거롭다 보니 소비자 선택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수익률이 낮아도 처음 가입한 금융사에 묶여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가입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시장경쟁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고자 현물이전 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물이전은 퇴직연금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연금 서비스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며 "가입자와 사용자의 수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퇴직연금 수익률 무기" 적립금 유치 박차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394조2832억원으로 집계됐다. 그중 은행권 적립액은 207조1945억원에 달한다. 퇴직연금의 52.5%가량이 은행에서 취급되는 셈이다.증권사와 보험사는 퇴직연금 적립액 비중이 각각 23.9%, 23.6%로 비슷한 가운데 1년간 수익률로만 보면 증권사가 금융업권 중 가장 성적이 좋다. 실제 증권사 퇴직연금 수익률은 7.11%인 반면 은행권은 4.87%, 생명보험업은 4.37%, 손해보험업은 4.63% 등이다. 투자 상품 매매가 증권사에 유리하고 ETF(상장지수펀드) 등을 포함한 포트폴리오가 수익률 제고에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퇴직연금 현물이전이 퇴직연금 계좌의 금융사 및 금융업종 간 이동을 위한 허들을 낮춘 만큼 연말 제도 시행과 함께 적지 않은 규모의 머니무브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증권사는 타업권 대비 높은 수익률을 바탕으로 하반기엔 은행에 치중된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끌어오겠다는 방침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ETF나 채권 등을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는 상품 라인업이나 계좌 수수료 무료 등 금융투자업계의 편의성과 수익률을 내세워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적립금 이전 기대감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는 벌써부터 신규 가입자 확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은 현재 신규 가입자들에게 상품권과 커피 쿠폰 등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증권업계 1위 사업자인 미래에셋증권은 높은 운용 수익률을 앞세워 투자자 모으기에 집중하고 있다.
10월 현물이전 도입 앞두고 인프라 구축 '매진'
현재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현물이전 도입을 위한 인프라 구축 작업이 한창이다. 앞서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등은 올 초 퇴직연금 현물이전 실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국내 45개 퇴직연금 사업자에 올 10월까지 관련 인프라 구축 작업을 마칠 것을 주문했다.증권 적립금·점유율 상위사 위주로 살펴보면 증권사 퇴직연금 1위 사업자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올해 초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오는 10월 시스템 가동을 목표로 인프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퇴직연금 상위 사업자인 현대차증권도 올해 3월 실물 이전 추진 관련 TF를 구성해 오는 8월까지 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제도 시행 도입에 맞춰 투자자 편의에 맞춘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NH투자증권도 "퇴직연금 실물 이전 시행에 맞춰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은 10월 정부의 정책 시행과 발맞춰 인프라 구축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관련 부서가 한국예탁결제원, 금융결제원 등과 소통하며 퇴직연금 사업자 간 이전 처리 시스템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실물 이전 제도가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을 촉진해서 가입자 편익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만큼 ETF나 채권 등 상품의 다양성과, 전산 인프라의 편의성에 중점을 두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