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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러-우 종전 협상에 속도를 내자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러시아 시장 재진입을 노리고 있다. 러시아 최대 규모 자동차 딜러사 창립자가 한국과 일본 자동차 브랜드 복귀 가능성을 시사해 주목받는다. 현지 시설을 처분한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시장 재진출에 필수적인 현지 생산시설 확보가 불투명해 난항이 예상된다.
25일 러시아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체리자동차의 브랜드 재쿠(JAECOO)는 옛 현대차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HMMR)에서 SUV 모델 'J7'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기준으로 100대 이상이 생산된 것으로 파악된다. AGR 공장 인근의 현대 글로비스 창고 역시 개조돼 중국차 부품을 보관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앞서 현대차는 러우 전쟁 여파로 가동이 중단된 HMMR을 2023년 12월 1만루블(한화 14만원)에 매각했다. AGR 오토모티브 그룹의 자회사인 아트파이낸스가 인수했다. 현대차는 2년 이내에 되살 수 있는 권리(바이백) 옵션을 매각계약에 포함했다. 기한은 올해 12월까지로 현대차가 러시아 시장 재진출을 위해 공장을 재매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25% 관세부과 가능성이 높아지며 시장 다각화가 필요한 현대차에게 러시아 시장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재매입 비용이 걸림돌이다. 14만원에 매각했던 이 공장의 장부가액은 현재 약 2873억원으로 추산된다. 공장 철수로 이미 약 1조1300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은 현대차에겐 이중부담이다.
현대차가 구축해놨던 생산 및 물류 인프라를 중국자동차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시장 재진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HMMR 뿐 아니라 올해 가을부터 KGM의 수출 차량의 일부를 조립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Avtotor' 공장 역시 기존의 현대차, 기아 BMW의 조립라인을 중국차 위주로 재구축했다.
러시아는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높은 수입 관세와 다양한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수입 자동차에 대해 부과하는 15~35%의 높은 관세율과 더불어 올해부터는 수입 자동차에 대한 폐기 수수료를 두 배로 인상할 계획이다. 지난해 러시아 국영 방산 및 자동차 기업 로스텍의 CEO 세르게이 체메조프는 "독일, 일본,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러시아를 외면했다"며 비우호국으로 분류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추가 제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중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국산 차량 비중은 약 2% 내외지만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및 독립국가연합(CIS)을 포함한 러시아 중심 시장 규모는 약 2억8000만명에 달한다. 주요시장인 유럽시장과 급성장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시장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에 EAEU 무관세 혜택 등 전후방 효과도 크다. 러시아 역시 2년 연속 3%대의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내수시장이 탄탄하다.
HMMR은 연간 최대 20만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역량을 갖추고 있다. 동유럽과도 인접해 전략적 공급기지가 될 수 있다. 현대차가 현지 생산시설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접경국인 카자흐스탄의 생산공장과 판매조직을 통해 우회 수출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다만 EAEU(유라시아경제연합) 인증을 받는데만 6개월 이상 소요될 수 있다.
코트라와 한국무역공사는 한국의 대러 자동차 수출은 전쟁 직전인 2021년 26억6460만달러(한화 3조6381억원)에서 2023년(6억4100달러, 한화 9150억원) 74.8% 감소했다고 밝혔다. 동기간 자동차 부품 수출도 76.3% 줄었다. 전쟁 전 러시아 시장 점유율 2·3위였던 현대차·기아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 사이 중국의 대러 자동차 수출액은 2023년 115억달러(한화 약 16조4162억원)을 돌파하며 618.75%의 성장을 이뤘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남기고 간 생산설비와 물류 인프라로 현지화를 시도해 1년 새 점유율을 50%대로 늘렸다. 지난해 현지 점유율 상위 10위 자동차 브랜드 중 중국차 브랜드는 9곳이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