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8일 오전 11시34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 이태원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고려아연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8일 오전 11시34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 이태원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고려아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고려아연 측이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 과반을 수성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날 주총 표결이 최대주주인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상태로 이뤄진 점에 MBK·영풍 측이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향후 임시 주총을 통해 이사회를 장악하겠다고 사전에 공언했던 만큼 양측의 분쟁은 초장기전으로 접어들게 됐다.

상호주 제안 놓고 공방… 고려아연, 영풍 의결권 제한

고려아연은 28일 오전 11시34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 이태원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당초 개회 시간은 9시였으나 중복 위임장 확인 작업 등의 절차가 지연되면서 2시간30여분 늦게 시작됐다.


주총 의장인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주총 시작과 함께 '고려아연→썬메탈홀딩스(SMH)→영풍'의 상호주 관계에 따라 상법상 영풍 보유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SMH는 지난 12일 영풍의 지분 10%대를 확보해 상호주 관계를 형성했다. 상법 369조3항은 자회사가 모회사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면 모회사가 의결권을 상실하는 상호주 제한을 규정하고 있다.

MBK와 영풍이 반발하며 의결권 행사를 허용해달라고 가처분을 제기했지만 지난 27일 재판부는 상호주 제한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제51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 /사진=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제51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 /사진=

이후 영풍은 같은 날 저녁 진행된 주총에서 1주당 0.04주의 배당을 결의해 SMH의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리며 상호주 관계를 해소했다. SMH는 주총 직전 장외에서 영풍 주식 1350주를 매수하며 지분율을 다시 10.3%로 끌어올려 상호주 관계를 재형성했다.

MBK·영풍은 위법한 행위라며 반발했다. MBK·영풍 측 법률 대리인은 "SMH가 보유한 영풍 지분율이 10%를 초과했다고 하는데 언제, 어떤 경위로 취득했나"라며 "상호주 제한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려아연 법률 대리인은 "회사는 SMH로부터 오늘 주식 확보 통지를 받았고 여기엔 잔고 증명서와 거래 내역서가 포함돼 있다"며 8시54분에 잔고 증명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영풍 측은 "잔고증명서는 사적 서류로 SMH가 현재 그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지 소유자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고려아연 측은 "소유자 증명서는 주주가 회사에 권리 행사를 할 때 제출하는 것인데 이번 건은 주주의 권리 행사가 아닌 권리 취득을 회사에 통지한 것이기 때문에 잔고 증명서와 거래 내역서 만으로 충분하다"고 일축했다.

결국 이날 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 25.4%가 제한된 상태로 고려아연 측이 제안한 핵심 안건들이 순조롭게 가결됐다.

이사회 상한 등 무난히 통과… 향후 법정공방 예고

최 회장 측이 상정한 이사 수 19명 상한 안건은 주총에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 중 71.11%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어 진행된 이사 선임 투표는 지난 1월 임시주총 의결에 따라 집중투표제로 표결했다. 이사 수가 19명 이하로 제한됨에 따라 집중투표제로 선출할 이사 수는 8명으로 확정됐다.

표결 결과 고려아연 측 후보 5명 중 박기덕·김보영·권순범·제임스 앤드류 머피·정다미 등 5명이 선임됐다. MBK·영풍 측이 추천한 후보 17명 중에서는 권광석·강성두·김광일 등 3명이 선임됐다.

이어 분리선출 대상인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도 고려아연 이사회 추천 서대원 후보가 선임되면서 최대 19명인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0명, 영풍 측 4명 구도로 재편됐다.

이로써 고려아연은 이사회 주도권을 지킬 수 있게 됐고 최 회장은 MBK·영풍으로부터 경영권을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고려아연 주주총회가 열린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노조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이한듬 기자
고려아연 주주총회가 열린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노조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이한듬 기자

이날 주총 결과와는 별개로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MBK·영풍이 고려아연의 영풍 의결권 제한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MBK·영풍은 전날 법원의 가처분 기각 조치에 항고해 불복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MBK와 영풍은 향후 이사회를 장악할 때까지 임시 주총을 반복해 개최하겠다는 입장도 알렸다. 이에 앞서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 전량을 현물 출자해 유한회사인 와이피씨(YPC)를 설립해 상호주 관계 해소 방안을 마련해 둔 상황이다. 정기 주총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 카드였지만 다음 주총부터는 YPC를 통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최 회장 측은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추가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에도 김광일 MBK 부회장과 강성두 영풍 사장이 고려아연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점도 변수다. 이사회 구성은 최 회장 측이 앞서지만 향후 운영 과정에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됐다.

한편 주총 현장에는 고려아연 노조 외에도 홈플러스 노조가 집결해 'MBK는 기업사냥 중단하고 홈플러스 사태 책임져라!' '홈플러스 회생 MBK가 책임져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MBK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