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1년 서울 종로에 민족자본으로 설립한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 화신백화점 진열대에 값비싼 호피가 내걸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록 호피는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창업주 박흥식 사장은 호피값을 10배 올려 다시 진열하라고 직원에게 지시했고 호피는 하루 만에 매진됐다. 

국내 고가마케팅의 시초로 불리는 사례다. 소비자의 사치심, 허영심, 과시욕 등을 이용하는 이 마케팅 기법은 사치를 조장한다고 해서 ‘사치마케팅’으로 불린다. 이 개념에는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동반한다. 구매력이 충분한 소비자들은 희소성을 갖춘 매력적인 브랜드에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들은 그것을 소유하기를 열망한다.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두가지 방향으로 이뤄진다. 원가를 줄여 싸게 판매하거나 원가를 높이면서 제품값도 함께 올리는 방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황일수록 기업들은 후자에 더 주목한다.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진짜 부자들은 차별화된 가치만 주면 가격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부동산 전망 속에서 건설사가 고급화 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에 몰린 예비청약자들. /사진제공=래미안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에 몰린 예비청약자들. /사진제공=래미안

◆건설사, 강남지역 고급화가 ‘통한다’
최근 주요 건설사들이 기존의 자사 아파트브랜드를 뛰어넘는 프리미엄브랜드를 론칭하며 고급화 전략을 펴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4월 ‘디 에이치’(THE H)라는 고급 아파트브랜드를 론칭했는데 같은해 6월 수주한 서울 반포 삼호가든 3차 재건축이 완공되면 사용할 예정이다.

자사의 대표 아파트브랜드 ‘힐스테이트’가 강남 재건축 수주에서 삼성물산의 래미안 에스티지, GS건설의 아트자이 등에 번번이 밀리자 이들과 유사한 고급브랜드를 만들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앞서 대우건설, 롯데건설, 대림산업, 두산중공업도 각각 ▲푸르지오 써밋 ▲롯데캐슬 노블 ▲아크로 ▲트리마제 등 고급브랜드를 새롭게 출시하며 고급화 경쟁에 가세했다. 이 고급브랜드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4000만원에 육박한다.

실제 지난해 10월 분양한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S’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3851만원, 반포 센트럴 푸르지오 써밋은 3.3㎡당 4094만원이었다. 지난해 11월 분양한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는 3.3㎡당 4257만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고급브랜드 아파트는 대부분 강남권과 인근 지역에 한정돼 있다. 이 지역이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수요자가 많은 데다 재건축 수요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건설사 브랜드마케팅팀 관계자는 “강남 3구 거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니즈는 다른 지역과 확연히 달랐다”며 “차별화된 가치만 주어진다면 돈은 상관없다는 이들이 넘쳐났다. 확실한 가치소비를 원하는 고객니즈에 맞추다 보니 강남 일대에서 고급브랜드 아파트 경쟁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시스 EQ900.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제네시스 EQ900.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자동차, 고급차시장 성장률 대중차의 두배 육박

자동차분야에서도 고급화는 트렌드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IHS와 현대차에 따르면 전세계 고급차시장은 2010~2014년 연평균 판매 증가율이 10.5%를 기록하며 대중차시장 증가율(6.0%)을 크게 상회했다.
수익성도 고급차시장이 대중차시장보다 우수하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그룹 11곳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2곳의 고급차 기반 완성차그룹(BMW·다임러)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8.8%를 기록했다. 반면 대중차와 고급차를 함께 판매하는 나머지 9개사(GM·포드·토요타·혼다·닛산·폭스바겐·FCA·PSA·르노)의 영입이익률은 평균 3.9%에 머물렀다.

최근 자동차 수요자의 성향도 남과 비슷한 구매형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보다 높여주는 차량의 소비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에 발맞춰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11월 고급브랜드 ‘제네시스’를 새롭게 론칭하며 브랜드 고급화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공식출시된 제네시스 EQ900 가격대는 3.8모델의 경우 7300만~1억700만원, 3.3터보가 7700만~1억1100만원, 5.0모델이 1억1700만원으로 고가지만 출시 후 두달이 넘도록 사전계약자에게 차량인계를 완료하지 못했을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산업은 기존브랜드 간 경쟁심화와 신흥시장의 위축 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고급화 전략은 미래를 내다본 선택으로 기존 현대차브랜드 역시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 /사진=뉴시스 DB
스타벅스. /사진=뉴시스 DB

◆스타벅스, 커피값 세계 두번째로 비싸도 많이 팔려

커피전문점업계 1위 스타벅스도 1990년대 말 국내에 진출한 이후 고급화 전략을 유지하며 시장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6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미국(뉴욕), 중국(베이징), 일본(도쿄), 독일(베를린), 한국(서울) 등 주요 13개국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을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판매되는 아메리카노가 두번째로 비싼(4100원)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브랜드국인 미국(12위)의 판매가 2821원보다 1279원이나 더 비싼 수준이다.
나라별 소득, 물가 격차를 감안하면 실제 차이는 더 크다. 한국에서는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한잔 가격이 한끼 식사값에 육박하지만 미국에선 밥값의 3분의1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 관계자는 “스타벅스가 진출한 70개국의 커피값은 현지 임대료, 인건비, 인테리어비용 등이 달라 천차만별”이라며 “최근 한국에서는 임대료, 인건비, 유지보수비용 등이 더 상승해 영업이익률이 계속 떨어짐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고가정책을 유지하는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스페셜티로 내놓은 리저브커피가 차별화된 커피를 제공하는 고급화 전략제품”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전국 51개 매장에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커피마스터 배치, 전용 머그 및 텀블러 등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벅스 리저브는 6000~1만2000원대에 판매된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미국, 일본, 한국 등 일부 국가에 한정해 리저브커피를 소개했는데 아시아지역 리저브 판매국가 중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 수요가 특히 높은 편이다.

한 대기업 마케팅전문가는 “시장이 불확실할 때의 마케팅 전략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맞추거나 시장 상황과는 관계없는 부자를 위한 고급화를 추구하는 양갈래로 나뉜다”며 “앞으로 이런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이고 기업들은 안정된 판매통로인 고급화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