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30일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밑그림을 제시했다. 범용철강재 강국에서 고부가 철강재와 경량소재 강국으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내걸고 업계 전반에 걸친 체질개선을 시사했다.

이번 정부 발표의 핵심을 요약하면 ‘누구나 쉽게 만들지 못하는 철강제품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선 이번 발전안에 강제성이 없어 업체들이 과연 움직이겠느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업체가 스스로 정리할 것이라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제철 용광로. /사진=뉴스1 DB
현대제철 용광로. /사진=뉴스1 DB

◆수요 줄었는데 공급 넘치는 현실
정부가 철강업계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한 배경에는 ‘세계적 공급과잉과 수요감소’라는 현실이 있다.

이를테면 철을 주로 써온 자동차업계에선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등 철을 대체할 신소재에 관심이 높다. 업체들이 환경규제에 맞서기 위해 경량화라는 카드를 빼들었는데 ‘안전’을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철과 강도가 비슷하고 가벼운 무언가를 찾기 시작해서다.

커다란 배를 만들 때도 철이 많이 들어가지만 세계적인 조선업계 불황 탓에 수요가 크게 줄었다. 게다가 중국업체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국내업체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수요가 줄어듦에도 공급량이 감소하지 않는다는 데 세계 각국이 공감대를 형성했고 최근 몇년간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그 결과 초대형제철사가 생겨나 양과 질을 함께 챙길 수 있었다. 이번 정부의 로드맵 발표가 중요한 이유다.

일본과 중국은 이미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먼저 내수침체에 시달려온 일본은 6개 업체를 3개로 줄였다. 비효율설비를 감축하고 규모를 합리화하는 방향이다. 중국도 2020년까지 1억5000만톤을 줄일 예정이다. 구조조정 추진을 위한 실행력 확보에 중점을 뒀으며 설비가동률을 높이고 일관제철소의 덩치를 키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지난달 중국 내 2위 업체인 바오산과 6위 우한강철의 합병을 승인하며 세계 2위 업체로 올라섰다. 유럽도 대형화를 추구했다. 불필요한 설비를 매각하며 실속을 챙겼고 강소형 전문회사를 육성해 경쟁력을 키웠다.

글로벌 물량의 열쇠는 중국이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시장의 철강제품 수요는 16억톤이고 앞으로 매해 1%대 성장을 보일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이 설비를 줄이지 않고 계속 생산할 경우 2020년의 글로벌 생산량은 최대 28억톤에 달하며 중국과 다른 나라의 설비가 줄어들 것을 가정해도 23억톤이나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세계 조강의 4.3%를 생산해 세계 6위며 철강재 소비부분에서는 3.8%를 차지해 세계 5위다.


자동차용 강판. /사진제공=현대제철
자동차용 강판. /사진제공=현대제철

◆경쟁력 부족한 중소제철사 ‘위기’
지난해 우리나라는 고로 5495만톤, 전기로 3083만톤을 합해 8578만톤의 조강능력을 기록했다. 수요는 6967만톤으로 생산중단 예정인 317만톤을 줄일 경우 당장 공급과잉 우려 수준은 아니라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철을 만드는 공정은 크게 상공정과 하공정으로 구분된다. 상공정은 고로와 전기로로 나뉜다. 상공정에선 열연, 냉연, 강관, 도금·컬러와 후판이 포함되며 하공정은 철근, 형강, 봉강으로 구분된다. 상하공정을 모두 갖춘 국내 일관제철사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다.

보스톤컨설팅그룹(BCG)의 경쟁력 진단결과에 따르면 두 회사는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 포스코는 규모 면에서, 현대제철은 설비 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 발표에선 원료 조달능력이나 에너지 비용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전기로를 쓰는 중소제철사다. 전반적으로 경쟁력이 부족한 데다 중국산 반제품 수입량이 늘고 있어 그야말로 위기다.

산업부는 국내 철강제품의 경쟁력을 분류별로 분석했다. 판재류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지만 고부가제품의 기술개발이 부족하고 대체소재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평했다.

커다란 배에 주로 쓰는 두꺼운 철판인 ‘후판’은 경쟁우위가 미흡하다고 봤다. 조선 등 수요산업이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리란 보장이 없는 데다 중국업체와 품질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게다가 앞으로는 조선업체들이 중국제품을 쓸 거라는 분석도 내놨다.

철근과 형강은 중국업체 진출이 가장 활발한 분야다. 값이 중국제품 대비 12~14% 비싸고 품질은 비슷하거나 우위에 있다고 평했다. 현재 중국산 KS철강은 지난해 12개업체 23건에서 올해는 19개업체 45건으로 늘어 품질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강관은 종합강관사와 비교해 406.4㎜ 미만의 중소구경 강관사의 경쟁력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에 민감하고 수출 비중이 높은 특징 탓이다. 최근 에너지 개발 수요 위축으로 생산이 부진한 것도 경쟁력 악화의 배경이다.

◆생산과정 개선과 독창성 확보해야

국내 철강업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만드는 과정을 개선하는 것이며 둘째, 남들이 만들기 어려운 것을 잘 만드는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분야를 포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정부는 국내 철강업계가 우선 집중할 분야로 초고장력강판 등 철강 자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과 타이타늄, 마그네슘, 알루미늄 등 ‘경량소재’를 꼽았다. 업체들은 경량소재를 전통적인 ‘철’이 아니라고 간주하지만 철과 함께 써야 하는 합금기술의 필요성엔 충분히 공감하는 분위기다.

산업부에 따르면 타이타늄은 2021년까지 기술 자립화를 이루고 2022년부터 제품을 수출할 전망이다. 이 경우 세계 4번째 수출국 반열에 오른다. 타이타늄을 다룰 수 있는 나라는 여럿 있지만 고순도의 항공기용 소재로 만드는 건 현재 미국, 러시아, 일본이 전부다. 중국도 이 시장에 뛰어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강점을 보이는 마그네슘 강판은 2023년까지 세계점유율 1위, 알루미늄 강판 5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래자동차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에 철강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하려는 것들은 생각 이상으로 큰 사업”이라며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많은데 업체들이 하나씩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은 “이미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힘을 빼야 할지 내부적으로 결정한 상태”라며 “하지만 덩치를 줄이는 건 앞으로 시장 상황이 나아졌을 때 주도권을 뺏길 우려가 있어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